제1독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5-18
그 무렵 이코니온에서는 5 다른 민족 사람들과 유다인들이
저희 지도자들과 더불어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괴롭히고
또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다.
6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일을 알아채고
리카오니아 지방의 도시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8 리스트라에는 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앉은뱅이로 태어나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9 그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그를 유심히 바라본 바오로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10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11 군중은 바오로가 한 일을 보고 리카오니아 말로 목소리를 높여,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2 그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13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14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15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16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17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18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1-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고립되어 있지 않고 타자를 향해 행동하고, 자신이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관심에 공감하며, 하나의 목적에 도달하려는 열정을 일으킬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와 능력이 모두 예수님에게서 왔음을 확신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일으켰을 때, 신화적 세계에 갇혀 있던 그리스 사람들은 신이 사람 모습으로 내려왔다고 호들갑을 떨며 두 사도를 신으로 모시려는 우매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헛된 우상에 빠진 이들을 질책하며 자신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방인들을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당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상대방의 생각에 관심이 없고 자기만족의 대상으로만 삼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고 소유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상대와 나누는 사랑의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려고 더 멀리 보고, 더 진지하게 들으며, 더 소중하게 상대를 만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 안에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짧은 시간이라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보호자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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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그 무렵 26 사울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가 제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7 그러나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28 그리하여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다.
29 그리고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30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
31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참포도나무로 자신을 비유하시는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단순하고 명료한 비유를 통하여 당신 안에 머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어떤 가지도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말라 버리고, 결국 잘려 나가 불에 태워지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뿌리에서 얻은 영양분으로 열매를 맺으며 나무에 더 단단히 붙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것은 먼저 그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상의 순간마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태도와 판단을 기억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예수님처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께서는 주십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일어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울과 바르나바가 유다인들의 박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대히 설교하며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안에 머물고 계시는 예수님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기억하고 이야기한 것들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실천을 이끌어 냅니다. 
요한 사도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라고 권고합니다. 사랑은 느낌이나 관심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향해 행동하게 합니다. 그리고 행동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 앞에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령의 은사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나의 작은 실천이 포도나무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믿음의 결실이 될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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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44-52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을 직접 본 사람은 없습니다.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은 볼 수 없는 분이시니, 그분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허상이거나 자기기만 또는 자신의 바람을 투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특히 필립보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예수님을 통해서라도 하느님을 뵐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모양입니다. 그런 필립보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는 볼 수 없는 하느님을 우리의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만져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실로 체험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하느님의 얼굴이시고,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시며,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십니다. 
강생의 신비인 하느님 말씀의 육화는 그리스도교의 존재 이유입니다. 모든 종교는 저마다 한계를 지닌 인성과 대조되는 초월적 신성에 대하여 다양하게 가르치지만, 그리스도교는 그들과는 달리 초월적 신성의 하느님께서 한계를 지닌 인성 안에 머무르시며 인간을 영원한 신적 생명에 초대해 주고 계시며, 인간이 하느님께 다가가는 절대적 기준이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한 인격과의 만남에 있다고 확신하며 가르칩니다. 
한 인간의 완성이 고통과 죄,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 희망이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믿는 이에게 더 이상 세상의 한계들은 영원한 희망을 가두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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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본능에 따르는 경우도 있고, 취향이나 가치관을 따르기도 합니다. 어떤 선택이든 그 선택의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선택에 대한 후회는 우리 마음을 언제나 산란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선택에 따른 확신이 서지 않을 때마다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기적을 보면 확신이 서다가도,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시거나 율법 전통과 다른 내용을 가르치실 때마다, 정말 이분이 메시아가 맞을까 하는 고민도 생겼을 것입니다. 
토마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분명하고, 그 길이 보편적인 진리이자 내게 생명을 주는 길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은 세상의 논리로 쉽게 따르기 힘든 길처럼 보입니다. 메시아라면 어떤 세속의 권력을 넘어서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데도 불의하게 사형 선고를 받으셨고, 십자가에 처형되셨으며, 무덤에 묻히셨기 때문입니다. 
의심과 불신은 인간적인 고뇌에서 생깁니다. 그러나 믿음의 확신은 이 불신을 넘어 예수님의 부활과 제자들의 복음 선포의 진실성을 받아들이는 결단에서 나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고서 부활의 기쁨을 누린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삶의 권위이자 확신이 아닐까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오해와 편견에도 흔들림 없이 신앙을 지켜 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주님께 청해 봅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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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내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주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뻐하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삶으로 보여 줄 때, 이들에 대한 신뢰로부터 믿음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마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당신을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 것은, 믿음이 확실한 증거가 아닌 권위 있는 증언과 지혜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식과 다릅니다. 인간의 지식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내려는 바벨의 탑을 쌓아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교만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실제로 인류는 과학 기술의 진보와 인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신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왔지만, 인류가 여전히 겪고 있는 폭력과 전쟁, 불의와 모순은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전도 여행 중에 들른 안티오키아에서, 회당에 모인 이들에게 구약 성경에서부터 시작된 하느님 구원의 대서사시를 감동적으로 들려줍니다. 예수님의 출현과 그분의 구원 업적이, 이스라엘 백성이 겪어 온 구원에 대한 갈망을 채워 주는 궁극적인 완성임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미 믿음을 통해 성장한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나 교회 안에서 성장하고, 교회를 통해서 표현되며, 교회와 더불어 실천되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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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청년성서모임에서는 요한묵시록의 바른 이해를 위해 영상강의를 진행합니다.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님의  평화방송 영상 강의를 바탕으로,

지도신부님의 해설과 참여자들의 나눔을 통해 요한묵시록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고자 합니다. 


 

- 5월 강의 일정

  ∙ 5월 11일(금) 19:30~20:30 - 제3강 요한 묵시록에 표현된 어린양의 호칭

  5월 25일(금) 19:30~20:30 - 제4강 현재를 위한 예언의 말씀

 

강사(영상강의)/해설 :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 / 청년성서모임 담당 김호준 시몬 신부


- 진행 : 영상강의 시청 → 지도신부님 해설

 

장소 마산교구청 지하 1층 청년성서모임 센터

 

대상 가톨릭신앙을 가진 청년 누구나

 

진주지역 차량운행 당일 가좌성당 앞 18:20 출발(탑승신청 문자 요망)

 

문의 신병두 필립보(010-3156-6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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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5,5ㄴ-14
사랑하는 여러분,
5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6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7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9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10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11 그분의 권능은 영원합니다. 아멘.
12 나는 성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바누스의 손을 빌려
여러분에게 간략히 이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격려하고,
또 하느님의 참된 은총임을 증언하려는 것입니다.
그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
13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14 여러분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20ㄴ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믿음에는 확증이 필요합니다. 내가 믿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 믿음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 사람은 없습니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의 기쁨과 효과를 자신들이 먼저 체험하지 못했다면 결코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지닌 사람은 내면의 나약한 인간성을 받아들이면서 회심과 쇄신을 통하여 외적으로도 놀라운 표징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는 표징들이 따를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알려 주십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굳은 믿음을 갖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참된 신앙인들은 이런 표징들을 일으킵니다. 죄와 악행에 빠진 이들을 회개시키고, 악한 영들을 물리치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언어를 씁니다. 진실하고 선한 의지를 갖고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이의 손길은 어떠한 해악도 입지 않고, 오히려 악을 이기는 선의 능력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된 신앙인으로서 이런 표징들을 보이려면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를 대하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적대자 악마에게 대항할 것을 당부합니다. 비록 그들이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악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셨기에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영광을 선사하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나의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베드로 사도의 충실한 협력자였던 마르코는, 바로 이런 신앙의 빛 속에 살았기에, 복음서를 쓰면서 참된 회개와 복음의 기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말뿐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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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그들은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9-26
그 무렵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2-30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행적을 둘러싸고 유다인들의 갑론을박이 심해졌습니다. 유다인들은 답답한 마음에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이 바라는 메시아라면 그분을 중심으로, 로마 제국에 기대어 권력에 빠져 있는 자신들의 임금에 대항해서 다윗 왕조의 옛 영화를 되찾고자 하는 운동을 벌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과 말씀으로, 메시아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으로 수난하고 부활할 것임을 예고하셨음에도,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지닌 메시아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구원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양들이 아니기에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그분을 따라나서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양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지키시며,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성부이신 하느님의 권능에 속한 것이며,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당당히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이를 빌미로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몰아가고 마침내 십자가에 매달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당신을 끝까지 따른 이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약속대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선포되었고, 누구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면 성령의 빛을 받아 참된 생명을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리신 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유다인들처럼 내게 필요한 능력과 권력을 지닌 메시아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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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은 목축업에 익숙한 유다인들에게 친근한 ‘목자’와 ‘양 떼’라는 표현을 통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속해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과 착한 목자에게 속한 적이 없어 예수님께 응답하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목자에게 속한 양 떼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가 인도해 주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듣지 않아 목자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양 떼도 있고, 양 떼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훔치고 죽이려는 이들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언제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유다인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복음에 공감하고 기뻐하며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분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이단시하며 그분을 거짓 예언자로 몰아가던 군중과 유다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을 위선자이자 거짓 예언자로 몰던 자들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그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이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베드로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을 만나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음식을 먹었다며 논쟁에 휘말렸을 때, 그리스도의 구원은 유다 민족에 국한된 율법 전통에 매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의 거룩함과 선함, 아름다움을 깨달은 모든 이에게 열린 것임을 환시를 통하여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는 말씀처럼, 자기 편견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내린 성령 세례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는 표징입니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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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8-12
그 무렵 8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2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양 떼를 이끌고 보호하는 목자의 표상은 구약 성경에서 때로는 하느님께, 때로는 메시아 임금에게, 때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착한 목자”라고 부르며, 그분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셨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목자의 직분을 완전하게 실현하신 분이심을 밝힙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씀 속에 이미 예수님의 거룩한 십자가 희생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 떼를 책임지지 않는 삯꾼과는 달리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목자의 본분을 완성하셨습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거룩함에 이끌려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혼인성사를 통해 가정에 봉사하는 가정 성소와, 수도 서원을 통해 복음 삼덕을 실천하는 수도 성소,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직무 사제직에 동참하는 거룩한 사제성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양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시며, 목숨을 바쳐 양 떼를 지키며 보여 주신 목자의 삶은, 저마다 받은 성소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성소 주일인 오늘은 특별히 교회를 위하여 봉헌 생활과 사제직에 자신을 바치는 수도자, 신학생, 성직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물질적 세속화의 유혹이 거세지고 영적 가치들이 사라지는 우리 시대에,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하려고 결단한 수도자, 신학생, 성직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사목헌장 4항)하며 살아가는 소중한 소명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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