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초대

잠언의 저자는,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시라고 주님께 간청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 잠언의 말씀입니다. 30,5-9
5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7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곧 복음을 선포하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길을 떠나도록 당부하시지 않습니까? 여행하는 데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지팡이나 여행 보따리, 빵이나 돈마저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의도는 선교 활동 자체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는 능력이 부족한데, 나는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핑계를 대지 말고, 그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열정을 가지고 행하라는 당부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생각하고 싶은 점은 복음 자체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 선교 활동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선교하려는 지역의 문화나 전통을 무시하고, 그저 그리스도교만 강요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 결과 박해의 빌미를 주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뿌리내리려면, 그 전에 그 지역의 문화나 관습, 종교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복음처럼 선교사는 자신의 문화나 풍습, 언어 등 모든 것을 놓아두고 빈손으로 가야만 합니다. 선교 지역에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새롭게 배우며, 그들의 전통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친교를 나누어야 하지요. 그 뒤 예수님 말씀을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 맞게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과거 선교사들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점을 오늘날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참하느님이시고, 참사람이신가?

예수님께서는 신적 위격의 단일성 안에서 갈라질 수 없는 참하느님이시고, 참사람이시다.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본체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께서는 우리와 형제인 참인간이 되셨지만, 언제나 우리 주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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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잠언의 저자는,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 가지 교훈>

▥ 잠언의 말씀입니다. 21,1-6.10-13
1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
2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3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4 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 그리고 악인들의 개간지는 죄악일 뿐이다.
5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
6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10 악인의 영혼은 악만 갈망하고 그의 눈에는 제 이웃도 가엾지 않다.
11 빈정꾼이 벌받으면 어수룩한 자가 지혜로워지고
지혜로운 이가 지도를 받으면 지식을 얻는다.
12 의인은 악인의 집을 살피고 악인을 불행에 빠지게 한다.
13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어머니 마리아께서 친척 형제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반가워하기는커녕 서운하게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물론 이 말씀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를 부인하는 말씀은 아니지요. 다만 하느님과 맺은 관계를 더 중시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회 에서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많은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때로는 윤활유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폐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인위적인 관계에 얽매이다 보면 옳은 일인 줄 알면서도 하지 못할 때가 있고, 반대로 혈연이나 지연, 학연에 얽힌 굴레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일마저 거절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느님 나라는 아버지의 뜻이 이 지상에서 완전히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이를 위해,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시켜야만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러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어 갈 것입니다. 아울러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형제자매들, 곧 새로운 가족들도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6. “강생은 무슨 뜻인가?

교회는 말씀의 유일한 신적 위격 안에 결합된 신성과 인성의 놀라운 일치의 신비를 강생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참으로 인성을 취하시어 사람” (요한 1,14)이 되셨다. 따라서 강생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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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요엘 예언자는,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한다(제1독서). 요한 사도는,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본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22-24.26ㄱㄴㄷ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16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예로부터 한가위 밤이면 보름달을 보고 소망을 빌곤 하였습니다. 달은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처럼 차고 기울고 사라졌다가는 또다시 나오지 않습니까? 달은 마치 탄생, 성장, 쇠퇴, 죽음, 그리고 또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종교성을 띠게 됩니다. 아울러 한가위에는 한 해의 결실에 감사드리곤 했지요. 우리도 보름달을 바라보며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보름달이 어두운 밤길을 비춰 주듯이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어두운 면을 밝게 비춰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한가위에는 떨어져 살던 가족들을 만나려고 고향으로 갑니다. 이는 새로운 힘을 받기 위함이지요. 신앙인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의 품입니다. 하느님 나라입니다. 한가위를 맞아 우리 삶의 근원과 최종 목적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또한, 한가위에는 돌아가신 이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 추억만을 회상하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 사건이 지닌 의미를 오늘의 삶 안에서 되살려 내는 것이지요. 그가 나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살아 움직이게끔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상을 비롯하여 먼저 가신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됩니다. 동시에 온 집안을 한 식구로 묶는 구심점도 되는 것이지요. 비록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들이 피운 꽃에 이어 지금 우리가 꽃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또 우리의 다음 세대가 우리를 대신해서 꽃을 피울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5. 천주 성자께서는 왜 사람이 되셨는가?

성자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인간 구원을 위하여 성령으로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자 우리에게 거룩한 모범이 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2베드 1,4)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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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실학자들 몇몇의 학문적 연구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다른 나라들의 교회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는 전통을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결국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천주교는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명을 시성하였다. 이에 따라 9월 26일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아직 시성되지 못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말씀의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냐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한국 천주교회는 역사가 짧지만 수많은 순교자와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 무엇을 얻었습니까? 오히려 명예와 재산, 가족마저 잃지 않았습니까?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잃고 말지요.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까?
당시 사회는 상당히 혼란스러웠지요. 오랫동안 사회를 지탱해 주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정신적 지주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참된 삶은 무엇인가?’ ‘진정한 인간의 길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던 그들은 그리스도교에서 해답을 찾은 것입니다.
그 옛날, 우리 신앙 선조들이 복음을 접하면서 가장 깊이 매료되었던 점은 인간 존중 사상과 인간 평등사상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복음이 빠른 시간 안에 널리 퍼질 수 있었지요.
그러나 복음이 전해진 지 몇 백 년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복음의 가치와 대립하는 살인, 자살, 낙태 등 생명 경시 풍조, 인간 복제, 유전자 조작, 환경 파괴, 물질주의 등이 널리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신앙 선조들은 잘못된 가치관을 버리고, 참된 삶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신앙의 후손인 우리가 인간 존중의 정신을 회복시키고, 이를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 속에서 세상이 지니고 있는 많은 문제는 하나하나 풀려 나갈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4. “주님이란 칭호는 무슨 뜻인가?

성경에서 이 칭호는 통상적으로 하느님의 주권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이 칭호를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시며 자연, 마귀, 죄와 죽음을 지배하시고, 특별히 당신의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주권을 드러내신다.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은 권능과 영예와 영광을 하느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도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확언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다” (필리 2,9). 예수님께서는 세계와 역사의 주님이시며, 인간은 오직 그분께만 자신의 인격적 자유를 온전히 종속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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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난다며,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설명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는,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며 비유의 뜻을 알려 주신다(복음).


제1독서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35-37.42-49
형제 여러분, 35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오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36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37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
42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4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47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48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4-15
그때에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씨앗은 하느님 말씀입니다. 복음에서 보듯이 씨가 어디에 뿌려졌는지에 따라, 그 결실이 엄청나게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하느님의 말씀이 자라서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먼저 우리 마음을 좋은 땅으로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신앙의 여정을 잘 걸어가다가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땅이 되려면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서 탈피하여야 합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 기도보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뜻을 찾는 기도와 사랑의 실천을 우선시하여야 합니다. 개인적인 신앙, 나만을 위하는 신앙 형태에서 벗어나 이웃과 공동선을 생각하며 사회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아울러 이에 못지않게 영적이고 초월적인 가치도 추구해야만 합니다.
더불어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겪더라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과 함께 이러한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는 굳은 신앙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참된 하느님 체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느님을 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기복 신앙 위에 형성된 하느님의 모습을 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더불어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나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하느님께서 관리하도록 맡기신 자연과도 화해해야만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우리 각자는 점차 좋은 땅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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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태오 사도는 세리로 일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마태오 복음서’를 쓴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증언의 핵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복음서가 서술하는 나자렛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는 것”(『주석 성경』 ‘마태오 복음서 입문’ 참조)이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 사도는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부르시어 세리와 죄인과 한 식탁에 앉으시고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는 세리였기에 일반 민중으로부터 미움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살아가는 데 어떤 지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권력과 재산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마태오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영적 갈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마태오는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럼으로써 마태오는 안정된 직업을 잃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았습니까? 영적인 생명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는 바리사이들이 비난합니다. 부정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비난에 예수님께서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은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그런 만큼 하느님을 더 절실히 찾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의미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려면 자신을 영적인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육신이 아프면 곧바로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이 병든 것을 느끼기는 쉽지 않지요. 의외로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늘 남의 티끌만 바라보며 다른 이들 탓만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여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불편함과 불만마저 품게 되지요. 따라서 자기 자신을 올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나의 삶이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3.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의 외아들이신가?

예수님께서는 유일하고 완전한 의미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다. 예수님의 세례 때와 변모 때에 성부께서는 당신의 음성으로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버지를 아는” (마태 11,27) 아들로 소개하시면서, 당신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유일하고 영원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단언하신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 (1요한 4,9)으로서 성삼위의 둘째 위격이시다. 그분께서는 사도들 설교의 중심이시다. 사도들은 그분께서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요한 1,14)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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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라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그가 되었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며, 죄인인 여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1-11
1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7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6-50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우리는 두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이라는 바리사이와, 죄를 지은 여인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였지만 예의를 갖추지 않았지요. 당시에는 먼 길을 걸어오느라 발이 매우 더러워진 손님의 발에 물을 부어 주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바리사이 시몬은 이런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 호기심에 초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면 예수님의 발을 닦아 준 여인은 행실이 매우 나쁘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군중 틈에서 예수님을 보고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였기에 아끼던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 발에 발라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두 사람의 태도가 대조됩니다. 바리사이 시몬은 예수님께 아무런 요구도 없었습니다. 자신은 하느님 앞에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자신이 지은 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런 만큼 자신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신이 지은 죄를 느끼고 참회한다면, 그 어떤 죄도 다 용서받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용서는 사랑을 낳습니다. 많이 용서받을수록 더 많은 사랑을 베푼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과연 무엇인지를 성찰하며, 나의 부족함과 약점을 보완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무한한 자비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2. 예수님을 왜 그리스도라 부르는가?

그리스 말로 그리스도’ , 히브리 말로 메시아라는 칭호는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축성되고 성령을 통하여 구원 사명을 완수하시려고 기름 부음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려 왔고, 성부께서 세상에 파견하신 메시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 칭호를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를 명확히 하셨다. “하늘에서 내려 오시어” (요한3,13)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신” (마태20,28) , 곧 고통 받는 종이시다. ‘그리스도라는 칭호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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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는데,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먹보요 술꾼이라고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31─13,13
형제 여러분,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13,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통탄하십니다. 기쁜 일을 맞아 피리를 불어도 함께 춤추지 않고, 반대로 슬픔에 겨워 곡을 하여도 동참하지 않는 무관심은 상대방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으로 연결됩니다.
복음에서 보듯이 세례자 요한이 단식하니 마귀가 들렸다고 비난하고, 반대로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어울리시자,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태도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요.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많이 하면 채신머리가 없다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너무 권위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요. 옷도 모처럼 격식에 맞춰 입으면 형식적이라 비난하고, 간소하게 입으면 예의가 없다고 비난합니다. 이처럼 남이 하는 행동은 무엇이건 비난만 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이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이에 호응하는 이도, 비난하는 이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오로지 주 하느님의 평가에만 관심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확신입니다. 확신하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확신이 때로 흔들리거나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우리의 판단이 흐려지지 않도록, 또 어려운 때마다 가장 좋은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느님의 지혜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1. “예수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

주님 탄생 예고 때에 천사가 가르쳐 준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 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 (마태 1,21)이므로 그분의 신원과 사명을 드러낸다.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도 4,12)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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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 내시자, 사람들은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며 하느님을 찬양한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31ㄱ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청년의 장례 행렬을 만납니다. 외아들을 잃은 홀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시어 관에 손을 대고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이 한마디 말씀에 죽었던 젊은이가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얼마나 측은히 여기시는지 잘 알게 해 줍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에 놓인 사람이나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현실 세계에서 이미 구원의 의미를 느끼도록 해 주셨지요. 구원은 이 현세에서 시작되어 초월적 생명을 얻음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배고픈 이들과는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며, 아픈 이들은 낫게 해 주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정의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관심에 더 익숙해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일깨우십니다. “일어나라, 무관심과 무표정에서 깨어 일어나라.” 따라서 이웃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힘이 되도록 그들의 구체적인 아픔에 다가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80. 복음은 어떻게 전파되는가?

첫 제자들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이끌고자 그리스도를 알리려는 열정에 불탔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인식함으로써, 복음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치려는 열의가 솟아난다. 그 열의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의 계획 전체를 밝히고, 인류가 그분과 친교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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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자신의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다고 하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면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17-26.33
형제 여러분,
17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18 우선,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에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입니다.
20 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21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22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23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33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건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어느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자신의 노예를 살려 달라고 청합니다. 당시 백 명가량의 군사를 이끄는 백인대장이라면 유다인들에게는 정복자이며 이방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께 유다인의 원로에 이어 친구들까지 보내 예를 갖춥니다. 이를 통해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지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예를 살리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간절함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청을 드릴 때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노예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백인대장을 통해 그가 평소에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겸손한 이들과 함께하신다는 점을 오늘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나와 함께 일하고,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도 참으로 귀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을 탄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집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지요. 백인대장의 믿음과 겸손함에 감탄하셨기 때문입니다. 원로들까지 그를 칭찬하였지요.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봅시다. 혹시라도 나와 종교나 재력, 신분이 다르다거나 상대방의 외양만 보고는 그를 마치 이방인 취급하며 소외시키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어려운 지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이며 따스하게 대해야겠습니다.(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79. 인간에게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마태 16,16)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언이다. 헤로데 임금과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갈라 4,4-5) 하심으로써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몸소 약속하신 바들을 이행하셨다.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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