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1542년 스페인 아빌라의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체험한 그는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이후 요한은 ‘아빌라의 성녀’로 잘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영성 생활의 스승 역할을 하였다. 1591년 세상을 떠난 그는 1726년에 시성되었고, 1926년에는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회의 위대한 신비가인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은 영성 신학의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주님의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평화가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후손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으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는 요한을 마귀 들렸다 하고 사람의 아들을 먹보요 술꾼이라고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유배는 주님의 법을 경시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음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반면에 백성의 축복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히 따르고 불순종과 교만을 고집하는 온갖 변명을 저버릴 때 흘러넘치게 됩니다.
엄한 금욕 생활과 단식으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던 세례자 요한이 왔을 때, 사람들은 마귀 들린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처럼 먹고 마시며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과 메시아 행복을 전하는 예수님께서 오시자, 백성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을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난합니다.
장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의 비유는 히브리인들이 세례자 요한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요한과 더불어 그들은 죄를 회개해야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의 나라가 시작되기에 회개의 기쁨을 드러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는 주어진 순간에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엄격한 참회를 외친 요한과 따뜻한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는 매우 다른 삶의 양식을 지녔지만,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는 이에게는 그 죄로 말미암아 똑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맺게 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런 나쁜 뜻에도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요한의 행실에서든 예수님의 인격에서든 보이는 행실을 통하여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제자들과 하늘 나라와 그분 안에 있던 신적 능력의 표징들인 그분의 기적들로 드러나게 됩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207. ‘영원한 삶은 무엇인가?

영원한 삶은 죽은 다음 곧바로 시작되는 삶이다. 이 삶은 끝이 없을 것이다. 각 사람은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께 개별 심판(사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이는 최후 심판(공심판)에 의하여 확정될 것이다.

 

208. 개별 심판은 무엇인가?

개별 심판은 각자가 죽은 뒤 곧바로 자신의 행실과 믿음에 따라 그 불멸의 영혼이 하느님께 셈 바치는 심판이다. 그 결과는 즉각 또는 정화를 거친 다음, 하늘의 행복으로 들어가거나, 곧바로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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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 성녀는 로마 박해 시대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루치아의 순교 사실을 전하는 5세기의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은 그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의 신변을 염려한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 청년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동정을 결심하고 있던 루치아는 한사코 혼사를 거절하였다. 이에 격분한 약혼자의 고발에 따라 그녀는 결국 300년 무렵에 순교하였다. 루치아(Luc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뜻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되었다.


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며,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너의 구원자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1,13-20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15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16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17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18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
19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20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부터 12월 16일까지 날마다 복음은 중심에 세례자의 표상을 두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바빌론에 유배당한 이스라엘 백성을 귀향시키실 것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주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어 광야를 정원으로, 메마른 땅을 물이 샘솟는 곳으로 만드시면, 그 물을 마시는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메시아의 선구자인 요한의 목소리도 광야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두 예언자 모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그분의 기다림을 구체화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출발점에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언급하신 중요한 인물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고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뛰어남을 드러내는 이 표현은 개인적인 가치에 속하는 질적 판단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 나라가 가져다 줄 구원과 비교해서 더 나은 상태나 상황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계약이십니다. 그분 인격과 메시지 그리고 그분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며, 새 구원 경륜은 하느님과 사람이 맺은 자녀 관계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믿음과 세례를 통해서 이런 신적 계획에 참여합니다. 여기에 구약보다 신약의 뛰어남, 회당보다 교회의 뛰어남, 모세의 법보다 그리스도 법의 뛰어남이 있습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205. 죽은 뒤, 우리 육신과 영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죽은 뒤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육신은 썩고, 불멸의 영혼은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지만, 주님의 재림 때에 변화되고 부활하는 육신과 결합되기를 고대한다. 그렇지만 부활이 어떻게 일어나리라는 것은 우리의 상상과 이해를 초월한다.

 

20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죄(죽을 죄) 없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죽는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인은 그분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죽음을 성부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행위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2티모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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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은 모두 당신께 오라고 하시며, 안식을 주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25-31
25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28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29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30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유배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고 했던 이사야의 말을 되풀이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오늘 복음 말씀으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께 오라고 하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두 번이나 반복하는 멍에의 표상은 무엇을 뜻할까요?
틀림없이 자유와 위로를 주는 이 메시지는 당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율법으로 만든 멍에, 까다로운 윤리를 강요하면서도 도와주려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던, 참을 수 없는 멍에에 대한 예수님의 선택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편하고 그분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형용사 ‘편하고’, ‘가볍다’는 명사 ‘멍에’와 ‘짐’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은 도덕적 방임주의를 뜻하지 않고 오히려 실행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새롭게 세우신 복음의 법에 대하여 할인을 주장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기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삼아 제 목숨을 확보하고 보장하는 것이 그분을 따르는 데 큰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그 종교와 도덕은 포악하고 몰개성적인 법에 대한 복종과 예속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자유의 법, 몸과 죄의 행실을 뛰어넘는 거룩한 영의 법, 생명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자녀다운 관계를 맺는 법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비밀 열쇠는 사랑입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203. “육신의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육신의 부활은 인간의 마지막 상태가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204.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고 영원토록 살아 계시듯이, 그분께서는 마지막 날에 모든 이를 썩지 않을 육신으로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리하여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요한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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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는 목자처럼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른바 ‘위로의 책’이라고 하는 제2이사야서 부분(40―55장)을 봉독하기 시작하는 오늘,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에 유배당한 당신 백성을 위로해 주십니다. 주님 친히 화려하게 빛나는 길로 변한 광야를 통하여, 당신 백성 앞에서 팔레스티나를 향하여 걸으실 것이라는 예언자의 말로 옛날 이집트 탈출을 뛰어넘는 새로운 탈출을 전해 줍니다.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기원전 538년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룩한 땅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게 도와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선 주인과 같습니다. 루카 복음의 병행 구절에서는 되찾은 양의 비유에 대한 정확한 동기를 알려 줍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루카 15,2) 하고 투덜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되찾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책임에 따르는 기쁨과 잃어버린 양을 찾게 된 행복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자비에 호소하시면서 소외받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당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방식으로, 곧 잃어버린 사람들, 죄인들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아무도 빠뜨리지 않고 받아들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201. 교회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

교회는 죄를 용서하는 사명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라고 말씀하시며 교회에 그 권한을 주셨다.  


202. “육신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중요성을 갖는가?

육신이란 연약하고 죽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인간을 가리킨다. “육신은 구원의 축이다” (테르툴리아누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육신을 속량하시려고 육신을 취하신 말씀을 믿고, 육신의 창조와 속량을 완성하는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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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하시며 그를 고쳐 주시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한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5,1-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들이 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왕골이 자라리라.
8 그곳에 큰길이 생겨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니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지 못하리라.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앞장서 가시니 바보들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
9 거기에는 사자도 없고 맹수도 들어서지 못하리라.
그런 것들을 볼 수 없으리라.
구원받은 이들만 그곳을 걸어가고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26
17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주님의 오심을 외치는 메시아 왕국의 부흥에 관한 기쁨은 믿는 이의 희망을 근거로 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오셔서 당신 백성에게 평화와 구원을 주시고, 사막은 꽃을 피우고 그분의 영광이 우리 땅에 내릴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하였던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을 때, 몇몇 사람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중풍 병자를 그분 앞에 내려 보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병이 낫기를 바라는 그에게 예수님께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불쾌해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간 중풍 병자의 치유는,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증거요 결과입니다.
당시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모든 질병은 윤리·도덕적 원인에서 비롯한다고 보았습니다. 질병을 병자나 병자의 부모가 지은 죄의 결과로 여긴 것입니다. 중풍 병자의 치유는 보이지 않는 영적 치유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 주시면서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는 하느님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199.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종말론적 모상이 되시는가?

온전히 거룩하시고 이미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을 누리시는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교회는 이 지상에서 이루고 천상에서 완성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관상하고 있다.


200. 죄는 어떻게 용서받는가?

죄를 용서하는 첫째가는 주된 성사는 세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받은 사람이 세례 이후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시켜 주는 고해성사를 제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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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중과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주일로 시작하는 대림 제2주간을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 오고 있다. 현 시대의 여러 가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깨우치려는 것이다.


말씀의초대

바룩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 주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기를 빈다고 한다(제2독서). 하느님의 말씀이 내리자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너의 광채를 드러내 주실 것이다.>

▥ 바룩서의 말씀입니다. 5,1-9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
2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의 겉옷을 걸치고
영원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관을 네 머리에 써라.
3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 어디서나 너의 광채를 드러내 주시고
4 ‘의로운 평화, 거룩한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너를 부르실 것이다.
5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보아라.
네 자녀들이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신 것을 기뻐하면서
해 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을 보아라.
6 그들은 원수들에게 끌려 너에게서 맨발로 떠나갔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왕좌처럼 영광스럽게 들어 올려 너에게 데려오신다.
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영광 안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도록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8 하느님의 명령으로 숲들도 온갖 향기로운 나무도
이스라엘에게 그늘을 드리우리라.
9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1,4-6.8-11
형제 여러분, 나는
4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8 사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9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10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표상을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주는 표징으로 제시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성소의 특징이 세례자 요한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심오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의 위대한 예언자들의 전통을 보면 하느님 말씀은 광야에 있는 세례자를 향하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태중에서부터 선택하셨는데, 마리아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에 힘입어 거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이고 그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은 예언자가 되고 메시아의 선구자가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례와 교회에 속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대상이며 그분께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을 받으셔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인 성소는 하느님의 소중한 도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광야에서 요한은 하느님께서 그를 당신의 도구로 삼으실 수 있도록 증명해 보였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맡겨 드리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끝으로 성소는 강한 선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은 하느님께만 매여 있지 않았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게도 심오하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자신의 백성이 회개할 필요성을 온전하게 느끼는 감수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소유가 되어, 다가오는 새 시대에 교회 선교의 선구자라는 의식을 갖고 새 복음화를 위하여 계약의 하느님과 협력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197. 동정 마리아께서는 어떻게 교회를 도우시는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동정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설립 때부터 당신 기도로 교회와 함께하신다. 하늘로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위하여 계속 전구하시며 모든 이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시고,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풍성한 공로에서 흘러나오는 구원의 영향력을 활용하신다. 신자들은 성모님 안에서 장차 그들이 맞이하게 될 부활의 예표와 표상을 보고, 그분을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칭호로 부른다.

 

198. 거룩한 동정녀께는 어떤 유형의 공경을 드리는가?

독특한 공경을 드리는데, 오직 성삼위께만 드리는 흠숭의 공경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공경이다. 이러한 특별한 공경은 하느님의 어머니를 기념하는 전례 축일들과 복음 전체의 요약인 묵주기도와 같은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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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믿음은 초대 교회 때부터 생겨났다. 이러한 믿음은 여러 차례의 성모님 발현으로 더욱 깊어졌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져 한국 천주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한국 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말씀의초대

하느님께서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고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한다(제2독서). 마리아는 천사에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한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9-15.20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6.11-12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이사악을 낳았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럼, 마리아도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성령의 활동이었지만 마리아의 믿음을 통하여 가능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일하시지만,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깨달은 마리아는 동정 잉태를 믿었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어느 여인도 경험하지 못한 일, 곧 처녀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하느님께 예물로 바쳤습니다.
흠 없는 처녀 마리아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잉태하게 되었고 성령께서 그 태 안에서 숨을 쉬시면서 그녀의 몸에 아무런 흠집도 내지 않고, 그녀의 순결을 더럽히지도 않으셨습니다. 또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였고 그 구원 계획에 응하며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느님께서는 어루만지시는 손길과 거룩한 애정으로 한 처녀를 어머니로 바꿔 놓으셨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온전히 그녀 품에 들어오시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믿음의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하느님 구원 계획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믿음을 통하여 세상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고 외치는 엘리사벳과 더불어 모든 세대는 오늘날 마리아를 행복한 여인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세상 안에서 마리아의 모성적인 사명을 계속 수행할 임무, 세상에 구원자를 전할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195. ‘모든 성인의 통공은 또 무엇을 뜻하는가?

성인들의 통공은 또한 거룩한 사람들’ (sancti) 사이의 친교, 곧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된 이들이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이루는 친교도 가리킨다. 지상에서 순례자로 있는 사람들, 현세의 삶을 떠나 우리 기도의 도움을 받으며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이들, 끝으로 이미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며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는 이들이 나누는 친교를 말한다. 이 모든 이가 다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삼위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하나의 가족, 곧 교회를 이룬다.  


196.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어머니신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은총의 세계에서 교회의 어머니시다. 마리아께서는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머리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27) 하고 말씀하시며 성모님을 어머니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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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시오 성인은 340년 무렵 로마인 가문에서 태어나 트레비리(지금의 독일 트리어)에서 자랐다. 일찍부터 법학을 공부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로마에서 공직 생활도 하였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가 된 암브로시오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를 옹호하였다. 그는 특히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는 한편, 황제의 간섭을 물리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암브로시오 주교의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강론은 마니교의 이단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교회로 이끌기도 하였다. 397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예로니모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회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말을 듣고, 눈먼 이들도 보게 되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사람 둘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외치자, 믿느냐고 물으시고는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신다(복음).


제1독서


<그날, 눈먼 이들의 눈도 보게 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9,17-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정녕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18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19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20 포악한 자가 없어지고 빈정대는 자가 사라지며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모두 잘려 나가겠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야곱 집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더 이상 얼굴이 창백해지는 일이 없으리라.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내 손의 작품인 자녀들을 보게 될 때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리라.
24 그리고 정신이 혼미한 자들은 슬기를 얻고
불평하는 자들은 교훈을 배우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당신을 따라오면서 보게 해 달라고 외치며 청하는 눈먼 두 사람을 고쳐 주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하시자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제1독서는 메시아 시대를 언급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기적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눈먼 이들의 눈이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고, 높은 데서 오는 구원은 고통당하는 이들과 겸손한 이들을 주님 안에서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주님의 오심이 믿음과 변화, 자유와 정의, 주님 안에서 희망과 기쁨을 주는 순간이라고 말해 줍니다.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에 숨겨진 낱말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필요성과 효과는 성경과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날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눈먼 두 사람의 경우처럼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들은 주님 안에서 가난한 이들의 믿음의 여정과 일치합니다. 병든 이들의 믿음이 그들을 위한 나자렛 예수님 안에 현존하는 신적 능력의 행위를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신 이들에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가 믿는 대로 되어라.”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기적을 일군다.”라는 말은 그 기원과 확신을 복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기본 전제이며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믿음이 없는 고향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193. 봉헌 생활은 교회의 사명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봉헌 생활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증언하면서, 그리스도와 형제들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김으로써 교회의 사명에 참여한다.  


194. ‘성인들의 통공은 무슨 뜻인가?

이 표현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거룩한 것들’ (sancta) 곧 신앙, 성사, 특히 성찬례와 은사들과 다른 영적 선물들을 공유함을 가리킨다. 통공의 뿌리에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1코린 13,5) 사랑이 있지만, 신자에게 통공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도록” (사도 4,32) 자극하며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데 자신의 물질적 재화들을 활용하도록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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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을 길이길이 신뢰하라는 노래가 유다 땅에서 불리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른바 이사야 예언자의 ‘묵시록’(24─27장)에 속하는 제1독서의 출발점은 모압 도시의 파멸입니다. 반면 예루살렘은 힘세고 견고한 도시입니다. 성벽과 보루 때문이 아니라 이 도시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 주는 반석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예언자의 기쁨이 있습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복음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의 진지한 훈계로 끝맺습니다. 복음의 중심 낱말은 말을 ‘듣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뜻을 성실하게 실행하는 것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위 위에 집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하신 말씀을 구두나 문자 근본주의라고 비난하며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지만, 그분께서 우리를 당신 제자로 인정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로 가는 통행증을 얻으려면 우리의 입술뿐만 아니라 마음과 뜻도 중요합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만 우리는 삶을 견고하게 하고 그분의 합당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잡담으로 그치는 믿음을 경계해야 합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191. 평신도는 왕직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평신도들은 자신과 세상에서 죄를 물리칠 능력을 그리스도에게서 받았기에 자기 희생과 거룩한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직에 동참한다. 그들은 공동체 봉사를 위하여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인간의 활동과 사회 제도에 도덕적 가치가 스며들게 한다.

 

192. 봉헌 생활은 무엇인가?

봉헌 생활, 곧 봉헌된 삶은 교회가 인정한 생활양식이다. 이 생활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부르심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으로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성령의 감도 아래 사랑의 완성을 추구한다. 이와 같은 봉헌은 복음적 권고에 따른 삶으로 특징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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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광야에서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잔치를 베푸시고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5,6-10ㄱ
그날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전례는 어떤 구별도 하지 않고 모든 민족들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보편주의적인 잔치를 나타냅니다. 메시아 시대가 완전한 충만함에 이를 때 주님께서는 기쁨의 표상, 곧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 위에서 모든 백성을 위하여 기름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마련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실 것입니다. 사람을 행복과 충만함으로 채우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런 ‘메시아 꿈’이 이미 완성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신 뒤에 빵 일곱 개와 물고기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보다 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를 더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다른 경우에서 강조하신 것처럼 병자 치유는 하늘 나라의 표징입니다. 군중의 배고픔과 피곤함을 가엾게 여기시는 주님의 자비는 하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하늘 나라의 표징 이외에도 빵을 늘리신 기적은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에서 하느님의 새 백성의 새 만나로서 제정하신 성체성사의 예표입니다.
쓰러질지도 모르는 군중과 연대하셨던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우리는, 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만찬을 거행하는 것은 우리의 빵을 그분과 함께 나눔을 뜻합니다. 성찬례가 권위 있고 합당하려면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였고 빵을 늘리신 기적에서 예시되었던 메시아 이상을 실현하려고 힘써야 합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1일 가톨릭교리(출처:가톨릭교리서 요약본)


189.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평신도들은 특별히 성찬례 거행 때에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1베드 2,5), 곧 그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직 활동, 가정생활, 일상 노동, 겪어야 할 생활의 어려움, 정신적 육체적 휴식 등의 삶 자체를 봉헌함으로써 사제직에 참여한다. 이와 같이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령으로 도유된 사람들로서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190. 평신도는 예언자직에 어떻게 참여하는가?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신앙 안에서 더 깊이 받아들이고, 생활의 증거와 말씀, 복음 선포 활동과 교리교육을 통하여 그것을 세상에 선포함으로써 예언자직에 참여한다. 이러한 복음 선포 활동은 세속의 일반 환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특별한 효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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