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본능에 따르는 경우도 있고, 취향이나 가치관을 따르기도 합니다. 어떤 선택이든 그 선택의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선택에 대한 후회는 우리 마음을 언제나 산란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선택에 따른 확신이 서지 않을 때마다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기적을 보면 확신이 서다가도,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시거나 율법 전통과 다른 내용을 가르치실 때마다, 정말 이분이 메시아가 맞을까 하는 고민도 생겼을 것입니다. 
토마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분명하고, 그 길이 보편적인 진리이자 내게 생명을 주는 길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은 세상의 논리로 쉽게 따르기 힘든 길처럼 보입니다. 메시아라면 어떤 세속의 권력을 넘어서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데도 불의하게 사형 선고를 받으셨고, 십자가에 처형되셨으며, 무덤에 묻히셨기 때문입니다. 
의심과 불신은 인간적인 고뇌에서 생깁니다. 그러나 믿음의 확신은 이 불신을 넘어 예수님의 부활과 제자들의 복음 선포의 진실성을 받아들이는 결단에서 나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고서 부활의 기쁨을 누린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삶의 권위이자 확신이 아닐까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오해와 편견에도 흔들림 없이 신앙을 지켜 가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주님께 청해 봅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내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주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뻐하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삶으로 보여 줄 때, 이들에 대한 신뢰로부터 믿음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마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당신을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 것은, 믿음이 확실한 증거가 아닌 권위 있는 증언과 지혜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식과 다릅니다. 인간의 지식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내려는 바벨의 탑을 쌓아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교만의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실제로 인류는 과학 기술의 진보와 인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신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왔지만, 인류가 여전히 겪고 있는 폭력과 전쟁, 불의와 모순은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전도 여행 중에 들른 안티오키아에서, 회당에 모인 이들에게 구약 성경에서부터 시작된 하느님 구원의 대서사시를 감동적으로 들려줍니다. 예수님의 출현과 그분의 구원 업적이, 이스라엘 백성이 겪어 온 구원에 대한 갈망을 채워 주는 궁극적인 완성임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미 믿음을 통해 성장한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나 교회 안에서 성장하고, 교회를 통해서 표현되며, 교회와 더불어 실천되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5,5ㄴ-14
사랑하는 여러분,
5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6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7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9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10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11 그분의 권능은 영원합니다. 아멘.
12 나는 성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바누스의 손을 빌려
여러분에게 간략히 이 글을 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격려하고,
또 하느님의 참된 은총임을 증언하려는 것입니다.
그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
13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14 여러분도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20ㄴ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믿음에는 확증이 필요합니다. 내가 믿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 믿음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 사람은 없습니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의 기쁨과 효과를 자신들이 먼저 체험하지 못했다면 결코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지닌 사람은 내면의 나약한 인간성을 받아들이면서 회심과 쇄신을 통하여 외적으로도 놀라운 표징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는 표징들이 따를 것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알려 주십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굳은 믿음을 갖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참된 신앙인들은 이런 표징들을 일으킵니다. 죄와 악행에 빠진 이들을 회개시키고, 악한 영들을 물리치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언어를 씁니다. 진실하고 선한 의지를 갖고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이의 손길은 어떠한 해악도 입지 않고, 오히려 악을 이기는 선의 능력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된 신앙인으로서 이런 표징들을 보이려면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를 대하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적대자 악마에게 대항할 것을 당부합니다. 비록 그들이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악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셨기에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영광을 선사하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나의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베드로 사도의 충실한 협력자였던 마르코는, 바로 이런 신앙의 빛 속에 살았기에, 복음서를 쓰면서 참된 회개와 복음의 기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말뿐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그들은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9-26
그 무렵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2-30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행적을 둘러싸고 유다인들의 갑론을박이 심해졌습니다. 유다인들은 답답한 마음에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이 바라는 메시아라면 그분을 중심으로, 로마 제국에 기대어 권력에 빠져 있는 자신들의 임금에 대항해서 다윗 왕조의 옛 영화를 되찾고자 하는 운동을 벌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과 말씀으로, 메시아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으로 수난하고 부활할 것임을 예고하셨음에도,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지닌 메시아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구원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양들이 아니기에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그분을 따라나서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소명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양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지키시며,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성부이신 하느님의 권능에 속한 것이며,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당당히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이를 빌미로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몰아가고 마침내 십자가에 매달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당신을 끝까지 따른 이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약속대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선포되었고, 누구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면 성령의 빛을 받아 참된 생명을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리신 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유다인들처럼 내게 필요한 능력과 권력을 지닌 메시아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은 목축업에 익숙한 유다인들에게 친근한 ‘목자’와 ‘양 떼’라는 표현을 통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속해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과 착한 목자에게 속한 적이 없어 예수님께 응답하지 않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목자에게 속한 양 떼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가 인도해 주는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듣지 않아 목자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양 떼도 있고, 양 떼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훔치고 죽이려는 이들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언제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유다인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복음에 공감하고 기뻐하며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분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이단시하며 그분을 거짓 예언자로 몰아가던 군중과 유다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을 위선자이자 거짓 예언자로 몰던 자들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그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이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베드로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을 만나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음식을 먹었다며 논쟁에 휘말렸을 때, 그리스도의 구원은 유다 민족에 국한된 율법 전통에 매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의 거룩함과 선함, 아름다움을 깨달은 모든 이에게 열린 것임을 환시를 통하여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는 말씀처럼, 자기 편견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내린 성령 세례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는 표징입니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8-12
그 무렵 8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2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양 떼를 이끌고 보호하는 목자의 표상은 구약 성경에서 때로는 하느님께, 때로는 메시아 임금에게, 때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착한 목자”라고 부르며, 그분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셨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목자의 직분을 완전하게 실현하신 분이심을 밝힙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씀 속에 이미 예수님의 거룩한 십자가 희생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 떼를 책임지지 않는 삯꾼과는 달리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목자의 본분을 완성하셨습니다. 
성소는 하느님의 거룩함에 이끌려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봉헌하는 삶을 뜻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혼인성사를 통해 가정에 봉사하는 가정 성소와, 수도 서원을 통해 복음 삼덕을 실천하는 수도 성소,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직무 사제직에 동참하는 거룩한 사제성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양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서시며, 목숨을 바쳐 양 떼를 지키며 보여 주신 목자의 삶은, 저마다 받은 성소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성소 주일인 오늘은 특별히 교회를 위하여 봉헌 생활과 사제직에 자신을 바치는 수도자, 신학생, 성직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물질적 세속화의 유혹이 거세지고 영적 가치들이 사라지는 우리 시대에,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하려고 결단한 수도자, 신학생, 성직자들이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사목헌장 4항)하며 살아가는 소중한 소명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기 이전에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과 예언을 다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당신을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이라고 하시며 자기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에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불평을 터뜨리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물론 실망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모두를 대신해서,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당당히 고백합니다. 이 고백에 담긴 확신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나 버릴지는 베드로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은 이후에야 베드로는, 세상의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의 자리로 오르셨음을 깨달은 베드로는, 세상의 모든 병과 죽음마저도 하느님의 능력에 맡겨진 일임을 알았기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 속에서 자신의 손을 빌려 중풍에 걸린 애네아스를 치유하고, 타비타라는 여제자를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는 놀라운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육체를 경시하고 영적인 일에 매달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육은 한계를 지닌 인간을 뜻하고, 예수님의 영의 인도와 도움 없이 인간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과 표징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매순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으며 성령의 지혜를 청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그는 민족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1-20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2-59
그때에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의 회심 이야기에는 한 인간의 역설적 삶이 보입니다. 열정적인 바리사이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의 눈은, 하늘에서 내린 빛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이후 사흘 동안 감겨집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로 넘어가는 파스카 성삼일처럼 사울에게도 이 암흑의 시간은 참된 진리를 깨우쳐 바오로 사도가 되는 정화의 시간이 됩니다. 

사울의 나쁜 평판을 듣던 하나니아스는 주님의 환시 속에 바오로가 사도로 선택된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오로를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라고 하시고, 바오로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고 하십니다. 
사울의 회심은 그가 가진 바리사이의 열정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열정으로 바꾸어 주신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실제로 바오로 사도는 세 차례의 전도 여행에서, 수많은 박해와 죽음의 위협에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희망하는 삶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시고, 십자가를 짊어지며 육신의 고행을 기쁘게 감내하는 사람이야말로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지혜를 얻는 사람임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 주신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시간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자유로운 영혼이 될 때 얻게 될 것입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경에서 빵은 생명의 표징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기에, 살면서 빵을 얻는 일만큼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모든 노동은 빵을 얻는 수고이고, 얻은 대가에 대한 만족감으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의 육신만을 살게 하지 않고 영혼까지 살게 하는 ‘생명의 빵’으로 비유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고 이 빵의 의미를 밝히십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삶은 혼자가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얻은 삶이고, 나의 삶은 누군가를 살게 하는 또 다른 삶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면서 서로에게 빵이 되어 주고, 밥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받기만 하는 삶이나, 누구의 것을 얻기만 하는 삶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오직 이기적인 욕망만 남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빵은 당신께서 걸으신 길, 당신께서 봉헌하신 삶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예수님의 길이 참된 생명의 길임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필리포스가 에티오피아 사람을 만나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고 세례를 준 사도행전의 일화는,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선교는 누군가에게 빵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빵을 얻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 속에, 선교는 말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나는 빵을 얻기 위해서만 살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빵과 밥이 되어 주려고 사는지 되돌아봅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제1독서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교가 지닌 위대한 신앙의 넓이와 깊이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특정한 민족과 시대, 인종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구원을 위한 것이며, 여전히 악의 세력과 죄의 시대를 살더라도 마지막 날에 이루실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 줍니다. 
초기 교회는 스테파노의 순교와 박해의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 신앙의 놀라운 표징과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그 표징은 예수님에게서 파견된 제자들이, 성령의 인도로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중풍 병자와 불구자들을 치유하는 놀라운 표징이었고, 이는 하느님의 구원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기쁨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 표징을 세상에 드러내고 복음의 기쁨을 전하려고 파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곳마다 세상의 가치들이 달라지고, 영혼의 아픔이 치유되며,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만나는 희망의 감탄이 쏟아집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고, 오류를 범하기도 했지만,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 고통을 딛고 희망을 보며, 자발적 가난을 통해 연대하고, 섬김과 희생으로 세상의 죄를 보속하며 예수님을 증언해 왔습니다. 
믿음은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느님의 능력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고 하신 예수님처럼, 끊임없이 나를 벗어나 이웃을 향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참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