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소돔과 고모라에게, 주님의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며, 당신의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이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상처받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의 말로, 누군가의 편견 때문에, 그 누군가의 미움 때문에 칼로 베인 듯 심장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개 상대에게 앙심을 품고 보복하거나 무기력한 자괴감에 빠져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은, 숨기고 싶은 자신의 실체를 바라보거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했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십니다.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 아버지를 선포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닙니다. 은폐되고, 왜곡되었으며, 부당하게 강요된 평화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서로 위로하며 분노의 발톱을 감추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군더더기처럼 붙어 있는 욕망과 사심, 위선과 교만의 덩어리들을 칼로 잘라 내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평화는 내 안이하고 무디어진 나태와 게으름에 칼을 대어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 내 목숨 하나만 잘 챙기면 된다는 이기심에 갇히면 내가 정말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를 잊을 수 있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식별해 내지도 못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은 평화를 얻으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 줍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자신의 목숨을 잃더라도, 서로의 십자가를 짊어져 주는 것이 우리가 더 절실하게 청해야 하는 은사임을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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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1995년 추계 정기 총회의 결정에 따라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 교회는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면서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갖게 살도록 이끈다. 각 교구에서는 농민 주일에 여러 가지 행사를 마련하여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과 창조 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말씀의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양 떼를 몰고 가는 그를 붙잡으시어,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하셨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신다(복음).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2-15
그 무렵 베텔의 사제 12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1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왔으며,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는 운명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파견되어 더러운 영을 쫓아내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들의 병을 고칠 수 있을 때마다 그런 능력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행여 제자들이 능력에 대한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지니고 가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도구로 쓰시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는 숙명을 사랑하도록 이끌고 계심을 먼 훗날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베텔에 파견된 아모스 예언자는 자신이 처음부터 예언자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자신을 붙잡으시고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고 명하셨기에, 박해와 반대가 두려웠지만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숙명 같은 삶을 견디고 사랑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병든 노부모를 모시고, 장애를 지닌 자녀를 돌보며, 누군가의 잘못을 짊어져야 할 순간도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 지금은 무거운 십자가이겠지만, 부활의 희망으로 바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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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내가 누구를 보낼까?”라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아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간이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 서면 두 가지 원초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황홀감’과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현을 목격한 이사야가 그 황홀경에 빠지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 여기며 두려워하는 모습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은 자신의 근원인 하느님에게서 벗어나 있다는 죄의식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거룩함을 마주하기에 부끄러운 인간의 속됨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자신이 숨기고 있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사람들을 기만하고, 자신을 숨기며, 오히려 남들의 죄악의 실상을 파헤치고 폭로하여 그들보다 낫다는 위선의 그림자에 숨어 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 없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숨기려는 죄악의 현실을 뜻하지 않은 순간에 드러나게 하시고, 우리의 어리석은 자만심과 교만을 꺾으십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십니다. 부끄러운 죄를 숨기기보다,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신” 하느님의 완전함과 거룩함 앞에 무릎을 꿇고 죄의 용서를 청하며, 하느님의 도구로 자신을 써 달라는 보속의 삶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내 신변의 위협 때문에, 내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행여 누가 볼까 신자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가는 모습 속에 우리의 속됨이 드러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현현 앞에 죄인임을 느끼면서도, 그분의 부르심에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 서는 연습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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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보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하며,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간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라고 하시며,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지혜는 지식과 다릅니다. 지식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로 성장하지만, 지혜는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 주어지는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겪게 될 시련을 예고하십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리 떼 속의 양들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지식의 논리를 넘어 전혀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내는 믿음입니다. 이리 떼 속에서 양들이 고통을 겪게 될 텐데,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위로는 인간의 지식과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뱀은 사탄의 표상처럼 이해되어 왔고, 비둘기는 성령의 표지로 자주 드러납니다. 제자들이 의회에 끌려가고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서 증언하게 될 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시며, 뱀이 지닌 슬기로운 지식의 언어로 그들의 헛된 지식의 허상을 깨닫게 해 줄 지혜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증언은 제자들이 쌓은 지식이 아니라, 그들 안에 살아 계신 아버지의 영, 곧 비둘기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성령의 거룩한 언어로 이루어질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누구나 살면서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얄팍한 지식으로 답을 찾다 보면 또 다른 덫에 걸려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의 언어는 기도를 통하여 깨닫게 되는 성령의 지혜입니다. 참된 지혜는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라는 호세아 예언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그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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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연민이 북받쳐 오르시어, 타오르는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으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 마음이 미어진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1-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2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파견됩니다. 그들의 임무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그 표징으로 병자들을 치유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이 자신들의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표지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여정에 자기를 보호해 줄 돈, 여벌 옷,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방문하는 집마다 평화를 빌어 주며 복음을 전하다 보면, 자신들이 머물 곳,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선교 활동에는 두 가지 큰 수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머무를 수 있을 곳에 머무르는 것이고, 둘째는 떠날 곳에서는 미련 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집에서는 이미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들이 머물기에 그들과 함께 가능하면 오래 머물수록 복음의 기쁨은 커집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말조차 듣지 않는 집에서는, 어떤 서운함이나 앙심을 품지 말고, 발의 먼지를 터는 행위를 통해 떠남의 겸손함을 배우도록 요청하십니다.
살면서 머물고 떠날 곳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내 영혼이 평안한 곳을 찾아 머물고, 쉴 새 없이 분주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삶의 자리를 툴툴 털고 떠나 잠시 멈추어 갈 수 있는 용기, 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내 삶을 혼란하게 만들고, 위선과 거짓으로 이끄는 우상들로 가득 찬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걸음마를 가르쳐 주시고, 팔로 안아 주시며, 병을 고쳐 주시는 분, 분노하지 않으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것임을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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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무렵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동굴에서 3년 동안 고행과 기도의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자 베네딕토는 마침내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서방에서 처음으로 수도회 규칙서에 공동생활의 규정을 제정하였다. 이 규칙서는 수도 생활의 표준 규범서로 삼을 정도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베네딕토 아빠스는 547년 무렵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은 죗값을 치러야 하고 사마리아는 망하리라고 하며,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0,1-3.7-8.12
1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3 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
임금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7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8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그때에 그들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쳐 다오!”,
언덕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하고 말하리라.
12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선택된 민족이라는 이스라엘의 자긍심은 그들의 교만과 우상 숭배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윗 왕조의 참된 후계라고 서로 맞서면서 세속적 권력과 이익에 눈이 멀었고, 결국 북 이스라엘은 화려한 성전과 제단과는 달리 위선과 거짓으로 하느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북 이스라엘을 상대로 호세아 예언자는,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라고 외쳤지만, 북 이스라엘은 물론, 뒤에 남 유다도 이민족에 의해 멸망의 비운을 맞을 때까지 예언자의 회개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하느님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였기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통하여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 모아 새 계약을 맺으시고 새 백성으로 일으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름받은 첫 제자들이 유다 사회의 뛰어난 지식층이나 엘리트는 아니었습니다. 바다에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는 어부들, 이민족에 빌붙어 먹고 살던 세리, 혁명을 꿈꾸던 사람, 셈에 밝았지만 결국 예수님을 배신한 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아픔을 겪고 사는 이들과 함께 지내시며 메시아의 도래를 예고하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심으로써 새 계약을 맺으시고, 하느님의 구원의 능력을 온 세상에 선포하게 하십니다.
세속을 벗어나 예수님의 마음을 찾고 수도원 공동체를 세워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고자 했던 베네딕토 성인의 열정이 우리 시대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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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송아지 신상은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라며, 주님의 분노를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8,4-7.11-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4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5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6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
11 에프라임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12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
13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기가 꺾이고, 어깨가 축 처진 채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이 예수님 시대에도 많았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에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지배 세력에 기대어 편하게 살고 싶은 이들과 당장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고 이방인의 신상을 만들어 우상 숭배를 일삼는 이들, 속된 세상 속에서 그래도 율법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며 종교적인 권위를 내세우던 이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힘들면 당장의 내 실속만 챙기는 모습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은 단순히 병자와 허약한 이들만이 아니라 마귀가 들린 사람들을 향해서도 표현됩니다. 예수님을 시기하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하며 그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마귀의 세력에 동조한 이들은 송아지들을 만들어 백성들을 현혹하고, 희생 제물을 좋아하며 그 고기를 받아먹는 거짓 예언자들과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이념으로 백성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지도 세력과 늘 맞서 싸우셨습니다. 개인의 단순한 윤리적 죄보다 그들이 악과 타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세상의 악과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개인의 잘못보다는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 놓은 악의 결과들이 많습니다. 경제적 양극화와 빚에 떠밀린 서민들, 가진 자들의 탐욕을 부추기고 가난한 이들이 일어설 길을 없애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길을 이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보여야 할 때가 아닐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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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초대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아내로 삼으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혈루증을 앓는 여자에게,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하시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어 그의 죽은 딸을 일으키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6.17ㄷ-18.21-2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6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17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
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21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22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회당장이 사랑하는 딸을 잃었습니다. 이미 죽은 딸을 살려 낼 방법은 없지만,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들이 하느님의 능력에서 나온 것임을 믿었기에, 죽은 딸에게 손을 얹어 살려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믿음에 응답해 주셨고, 죽은 소녀를 살리십니다. 만일 회당장이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면 사랑하는 딸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서라도 부끄러운 자기 병을 치유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남에게 말 못할 병을 앓아 본 사람이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여인은 예수님의 능력이라면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혈루증을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믿음의 결과이고, 진실한 믿음은 세상의 병에서 해방되는 선물까지 얻게 해 줍니다.
우리 세대를 불신의 시대라고 합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인생인데 커지는 불신은 서로에게 너무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호세아 예언자가 이미 타락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자 창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여 그녀를 광야로 불러낸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고 첫사랑을 나눈 장소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던 것입니다.
과학 기술과 첨단 문명이 발전해도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믿음은 상대의 완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 상대의 불완전함을 채워 주려는 결단에서 생깁니다. 믿음은 치유의 시작임을 기억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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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9장



말씀의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를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셨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힘이 그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기쁘게 그의 약점을 자랑한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반항의 집안도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2-5
2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때 나는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나를 반역해 온 저 반역의 민족에게 너를 보낸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처럼 오늘날까지 나를 거역해 왔다.
4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하고 말하여라.
5 그들이 듣든, 또는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어서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2,7ㄴ-10
형제 여러분,
7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몸 안에 가시를 안고 그 고통을 없애 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한 바오로 사도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누구나 자신을 괴롭히는 약점과 남에게 보이거나 들키고 싶지 않은 단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약점이 오히려 자만하지 않도록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 믿었기에,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숙명처럼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셨듯이 바오로 사도도 자신의 숙명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에제키엘 예언자를 보내시면서, 그들이 예언자를 받아들이든 말든 그들 가운데에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예언자 자신은 반대받는 표적이 될지언정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에제키엘 예언자는, 어떤 처지에서든 이스라엘의 회개를 선포하는 소명을 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께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늘 곁에서 별다를 바 없이 자라던 고향 사람이 갑자기 위대한 예언자로 칭송받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싫어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비판하고 되돌아볼 것을 외치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피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 약점을 들추어내고 단점을 지적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싶어도, 때로는 그들의 비판 속에서 내 완고하고 편협한 생각을 열어 줄 예언자의 목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겠습니다. 겸손하게 나를 낮추면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의 약함을 통해 나를 성장시켜 주시지 않을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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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8장


말씀의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날에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며,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단식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내 백성의 운명을 되돌려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11-1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날에 나는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리라.
벌어진 곳은 메우고 허물어진 곳은 일으켜서
그것을 옛날처럼 다시 세우리라.
12 그리하여 그들은 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으로 불린 모든 민족들을 차지하리라.
─ 이 일을 하실 주님의 말씀이다. ─
13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밭 가는 이를 거두는 이가 따르고
포도 밟는 이를 씨 뿌리는 이가 따르리라.
산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모든 언덕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넘치리라.
14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리리니
그들은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 그곳에 살면서
포도밭을 가꾸어 포도주를 마시고
과수원을 만들어 과일을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저희 땅에 심어 주리니
그들은 내가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않으리라.”
─ 주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것을 헌것에 담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것을 잘 보존하려면 찢어지지 않는 새 부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바리사이들과 단식에 대해 논쟁하실 때였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 신심 깊기로 소문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축일에 하는 의무적인 단식 말고도 자발적으로 단식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단식이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진정한 표지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려는 위선적 행위가 되는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본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식은 모든 구원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여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혼인 잔치의 신랑에 비유하시면서, 하느님의 말씀과 기적으로 세상에 구원을 베푸시는 복음의 기쁨을 맛보는 제자들이 슬퍼하며 단식할 수 없지 않느냐고 하시며 권위 있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신심 깊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을 깊이 섬기면서 단식으로 재계를 지켰지만, 그들의 낡은 율법에 대한 열정이 예수님께서 새롭게 열어 주시는 복음의 새 부대에 담겨질 수는 없음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허물어진 성읍을 다시 세우고 포도밭을 가꾸어 포도주를 마시는 새 날을 희망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이 되돌려질 날을 예언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등장은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새로운 계약에 담아내는 제자들의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비록 교회가 역사 안에서 박해와 타락의 역사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새 부대에 담겨진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일은 여전히 교회의 소중한 소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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