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리따에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고 야포로 가서, 병들어 죽은 타비타라는 여제자를 다시 살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라고 하시자, 베드로 사도가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많은 유다인이 생명의 빵과 성체성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기 거북하고, 따를 수 없다며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유다인들뿐 아니라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도 그러합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따라나선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고자 환호하던 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살 수 있다고 하시자 그만 돌아서고 맙니다. 이들이 돌아선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 영과 육의 대비를 보면서 창세기의 인간 창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사람의 마음 안에는 흙으로 빚어진 육에서 나온, 더 받고 싶은 마음, 곧 탐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숨에서 나온 하느님의 마음, 더 내어 주고 싶은 마음, 곧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탐욕으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가 서로 어긋나 이 세상에 고통과 죽음이 들어옵니다. 이 고통과 죽음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십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아드님께서는 아파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시고 그들을 사랑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되어 아버지께 건너가시게 되자 그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십니다. 
더 받고 싶은 마음, 탐욕이 고통과 죽음을 들여왔다면, 목숨까지 내어 주는 그 마음, 사랑이 생명을 가져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내어 주신 살과 피를 우리가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살게 되고, 생명을 얻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자기의 탐욕을 채우려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내어 주는 사랑 앞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믿지 않는 자들’이 되어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고단한 사랑의 길이다. 나와 함께 이 고통의 길을 걷겠느냐? 아니면 떠나고 싶으냐?’ (서철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