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회당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고, 사도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건너가셔야 할 시간이 되자, 사랑하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모범을 바탕으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당신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시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요한 13,36)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나서서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길’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체를 지닌 우리 인간은 영적 존재이신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아야 ‘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하느님이시면서 참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가는 ‘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때 삼위일체 하느님을 보여 주셨고, 당신의 말씀과 가르침뿐 아니라, 가난하고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치유해 주시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 안에 머무르면서, 그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할 때 “하느님은 사랑”(1요한 4,16)이시라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랑의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십니다. 사랑은 돌보는 힘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드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드실 뿐 아니라 돌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드시고 돌보실 뿐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사랑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그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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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설명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격려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내시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당신을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1,5―2,2)와 복음(마태 11,25-30)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셔야 할 때가 온 것을 아시고는 당신 제자들과 사랑의 만찬을 나누십니다. 만찬이 끝나고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던 가운데에 체포되시고, 다음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이 마지막 시간에 당신의 큰 사랑을 더욱 극진히 보여 주시고,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맨발에 샌들을 신었습니다. 흙길을 다녀야만 하였던 당시 사람들은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다른 집에 초대받아 가면 가장 먼저 종이 와서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그 일은 오직 종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깨끗하게 하실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사랑의 완성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그러나 늘 그렇듯 이 아름다운 말씀을 삶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2014년 8월 16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꽃동네 희망의 집에서 장애인들과 만나셨습니다. 당시 행사를 기획하다 보니 정작 아이들과의 만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아이 한 명당 60초가량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맞추어 연습을 하고 철저히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행사 당일 교황께서는 일정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제가 행사를 준비하면서 시간에 사람을 맞추었다면, 교황께서는 오로지 가장 낮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셨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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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성령께서는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시어, 키프로스로 건너가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24―13,5ㄱ

그 무렵 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25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서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부분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하여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참하느님을 모시고 오셔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가 알게 해 주시고, 그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주님 성탄 감사송 1).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 주신 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믿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세상의 빛’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파스카 성야를 떠올려 보면,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솟아오릅니다. 죄의 어둠, 무지의 어둠, 사랑이 없는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한 줄기 빛을 비추십니다. 마치 초가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듯이, 예수님께서는 파스카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어 삼위일체 사랑의 하느님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이제 그 십자가 사랑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심판받지 않고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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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 교회로 보내는데,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메시아인지 분명히 말해 달라는 유다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당신을 증언한다며 아버지와 당신께서는 하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9-26

그 무렵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2-30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12월 중순, 겨울에 거행되는 성전 봉헌 축제는 유다 마카베오가 시리아인들을 몰아낸 뒤 그들의 제단을 허물고 새 제단을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축제 기간 내내 촛불을 켜 놓고 압제의 어둠에 시달리던 그들이 자유의 빛을 되찾은 기쁨을 기념하였습니다.
기원후 1세기 유다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이 성전 봉헌 축제를 더 장엄하게 지내며 하느님께서 메시아, 곧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줄 구세주를 보내 주시기를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다그칩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이들은 마카베오가 시리아 왕국을 물리쳐 승리한 것처럼,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힘 있는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당신 스스로 메시아라고 말씀하시도록 하여 예수님을 반역죄로 죽일 근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으시고, 다만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라고 하시며, “당신이 메시아요?” 하는 질문에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내가 한 일을 보아라.”(요한 10,38 참조) 하고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하시며 하느님 아버지의 신성과 당신의 신성이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시기에 오로지 내어 주는 사랑만 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온 생애가 양을 위하여 언제나 함께하고, 목숨까지 내놓는 삶이었음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나서듯이 우리에게 당신의 삶을 보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삶을 살 때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 그분의 양이 될지, 다른 메시아를 찾아 나서는 ‘다른 양’이 될지 선택해야 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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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었다고 따지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무아경 속에서 본 환시를 설명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는 양들의 문이라며,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팔레스티나 지역의 목동들에게는 두 종류의 큰 위협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리나 늑대 같은 야생 짐승의 출몰이고, 다른 하나는 순식간에 나타나  양을 둘러메고 사라지는 강도들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양 떼를 이끄는 목동들은, 어두워지면 임시 울타리를 세워 만든 우리에 양들을 불러들여 보금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양 떼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취약한 부분은 문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불을 피우거나, 개를 풀어 두거나, 목동이 문지기가 되어 양들을 지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이신 당신을 통하여 양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면 들짐승이나 강도들로부터 보호받아 생명을 얻고, 또 문으로 드나들며 풀을 찾아 먹게 됨으로써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문은 양들에게 생명과 풍성함을 주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에게, 특히 다른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새로운 기준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는 기준을 통하여 양들에게 가고자 한다면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나의 기준에만 맞추어 양들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의 욕심과 수준에 맞추어 양들을 대하고 사랑한다면, 그 양들을 풀밭으로 보내 양식을 얻게 하거나 울타리가 되어 보호해 주기는커녕 그 양들에게 상처만 줄 것입니다. 마치 강도처럼 양들을 훔치고 죽이고 씨를 말리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의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준으로, 곧 아픈 이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고 애끊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장 낮은 이를 찾아 나서시는 예수님의 눈으로, 목숨까지 내어 주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착한 목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의 기준에서 사랑한다고 말하는지, 예수님의 기준으로 말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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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쳤다며,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 구원받는 데 필요한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한다(제1독서). 요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며,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8-12

그 무렵 8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2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소,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신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를 하고 복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신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지금까지 신학생으로 잘 지내고 있는데,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그저 나만이 바라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휩싸여 신학교를 그만둘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기도해 주시던 부모님과 교우들의 얼굴이 떠올라,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사제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 저는 죽어도 신부가 된 다음에 죽어야겠습니다. 처음부터 제 마음에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넣어 주지 마시지, 이제 와서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시면 어찌합니까? 절대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박박 우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처럼 될까 봐 주님의 기도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악을 쓰며 한 달을 씨름하니 모든 힘이 빠져 나중에는 입을 열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아!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 하느님과의 일치, 성인이 되는 것이구나! 그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한 길이 여럿 있는데, 어떤 이는 사제성소, 어떤 이는 수도 성소, 어떤 이는 혼인 성소를 선물로 받는 것이구나. 그 선물은 더 귀하고 덜 귀하고, 크고 작음이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느님이라는 큰 산을 오르는 여러 길 가운데 하나일 뿐이구나. 주님께서 ′너의 길은 이 길이 아니고 저 길이다.′ 하신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면 되는구나. 다만 지금은 신학교에 있으니 내가 받은 선물은 사제의 길이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그 선물에 합당한 이인가?’
그래서 그날부터 제가 받은 그 엄청난 선물에 합당한 이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여 잘 준비하고자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선물은 무엇이고, 그 선물에 합당한 이가 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특별히 사제성소와 수도 성소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응원하는 날입니다. 그들이 받은 성소의 길을 잘 걸어가도록 기도하고 힘이 되어 줍시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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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리따에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고 야포로 가서, 병들어 죽은 타비타라는 여제자를 다시 살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라고 하시자, 베드로 사도가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많은 유다인이 생명의 빵과 성체성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기 거북하고, 따를 수 없다며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유다인들뿐 아니라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도 그러합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따라나선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고자 환호하던 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살 수 있다고 하시자 그만 돌아서고 맙니다. 이들이 돌아선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 영과 육의 대비를 보면서 창세기의 인간 창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사람의 마음 안에는 흙으로 빚어진 육에서 나온, 더 받고 싶은 마음, 곧 탐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숨에서 나온 하느님의 마음, 더 내어 주고 싶은 마음, 곧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탐욕으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가 서로 어긋나 이 세상에 고통과 죽음이 들어옵니다. 이 고통과 죽음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십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아드님께서는 아파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시고 그들을 사랑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되어 아버지께 건너가시게 되자 그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십니다. 
더 받고 싶은 마음, 탐욕이 고통과 죽음을 들여왔다면, 목숨까지 내어 주는 그 마음, 사랑이 생명을 가져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내어 주신 살과 피를 우리가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살게 되고, 생명을 얻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자기의 탐욕을 채우려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내어 주는 사랑 앞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믿지 않는 자들’이 되어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나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고단한 사랑의 길이다. 나와 함께 이 고통의 길을 걷겠느냐? 아니면 떠나고 싶으냐?’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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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이르러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니아스에게 안수를 받은 뒤,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예수님의 이 말씀에 유다인들은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말다툼을 벌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과 대화하는 이들을 군중에서 유다인으로 바꿈으로써, 이들이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거부하고 적대시할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한발 더 나아가시어 ‘살을 먹고’ ‘피를 마시기’까지 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 구절부터 성체성사의 선물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언급합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하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신 것 또한 성체성사를 암시합니다.
특히 “내 살을 먹고”에서 동사 ‘먹고’는 ‘씹어 먹고’로 번역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먹는다는 일반적인 동사가 쓰이다가, 여기서부터 소리를 내어 씹어 먹는 행위를 강조하는 동사로 바뀝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씹어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이 성체성사 안에서 실제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주는 몸을 먹는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는 예수님의 살과 피의 실재성을 말하고,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참생명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그분의 희생에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따라서 우리가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살인 성체를 모시고 예수님의 피인 성혈을 마실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님 ‘안에 머무르며’, 예수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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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필리포스는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를 만나 세례를 주고,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시며,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저는 단팥빵을 보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동생들과 뛰어놀고 있으면 해 질 무렵 길모퉁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우리 맏손주 어디 있나?” 하고 저를 애타게 찾으시는 할머니 목소리입니다. 그러면 저는 놀던 것을 멈추고 곧바로 할머니에게 달려갑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달려오는 저를 향하여 엄지를 척 들어 올리시며 “우리 맏손주가 최고지!” 하시고는 몸뻬 바지 속주머니에서 단팥빵을 꺼내시어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새참으로 나온 빵을 챙겨 두셨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맏손주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루는 맛있게 빵을 먹다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안 드세요?” “응, 나는 욕지기가 나서 안 먹어도 돼.”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느 날 단팥빵을 먹다가 할머니가 주신 빵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농사일하시느라 허기지셨을 텐데 손주에게 주시겠다는 생각으로 참으셨구나!’ 그 순간 목이 메어 그 빵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라고 하십니다. ‘내려온’이라는 단어는 과거 시제로,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때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당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어놓으신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되셨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어린양으로서 당신의 살을 빵으로 내어 주신 것입니다.
“나의 살”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어 당신의 생명을 바치신 희생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희생과 사랑으로 당신의 살을 내어 주시어 세상에 생명을 주십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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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며,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리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하시자, 군중은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고 간청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4)라고 하셨을 때, 사마리아 여인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날마다 물을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되리라는 세속적 욕심에 그 물을 달라고 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길으러 오는 수고를 덜고 싶어 하고, 만나보다 좋은 육신의 배를 채워 줄 빵을 늘 받고 싶어 하는 욕심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나는 …… 이다.”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실 때 사용하시는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께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당신을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결코’를 두 차례 반복하시며 강조하십니다. 
이 ‘생명의 빵’에 대한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하느님께 받아 먹은 만나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하루 먹을 만큼만 거두어들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신명 8,3)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날마다 만나를 먹으며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여러 가지 곡식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이들을 돌보는 당신의 말씀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지혜 16,26). 따라서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며, 예수님의 말씀이고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그분께 가야 하고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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