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그리스도의 말씀은 선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아에게,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시자,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복음).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보좌 신부일 때 청년들과 함께 구유를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아이디어를 짜고 구유 안에 어떤 의미를 담을까 고민도 많이 하였습니다. 한 번은 구유를 가장 가난하게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가장 가난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쓰고 버린 폐기물들이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버려진 물건들로 구유를 만들어 보려고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폐자재도 주워 오고, 플라스틱 페트병도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것, 그래서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는 것으로 예수님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구유가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누우신 자리가 그러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의 기다림 또한 우리 자신의 가장 쓸모없고 버려진 마음, 너무 추악해서 들추어 보고 싶지 않은 자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곳으로 예수님께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런 곳을 바라보고, 거기에 자리를 마련해 두어야지만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과 처음으로 만난 제자들도 그러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어부에게 그물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물에 집착하였고 크고 좋은 그물을 얻고자 사람들과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였습니다. 제배대오의 두 아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렸다고 합니다. 같은 어부였지만,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호수로 나갈 수 있는 배를 가졌고 그런 배와 그물, 그리고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권력이었고 힘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그분을 만나 버렸던 것은 다름 아닌 욕심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권력과 힘에 대한 욕심이 바로 우리를 가장 추악하고 더럽게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지금, 우리는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탐욕을 마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의 자리를 비워 두어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실 것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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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종을 고쳐 주시기를 청한 백인대장의 믿음에 감탄하시며, 많은 사람이 모여와 하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기다림의 시간이 모두 같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풍 전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의 기다림과 시험 전날 잠을 못 자며 공부하는 아이의 기다림은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과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은 다릅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행복하고 기대되는지의 여부는 누구를, 무엇을, 그리고 어떤 상황을 기다리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백인대장의 기다림은 예수님께서 아픈 종을 반드시 고쳐 주실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의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자신의 처지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생각하고 배려합니다. 그래서 그 기다림은 사랑의 기다림입니다. 마침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예수님을 만난 백인대장은 이를 표현합니다. “주님, 제 종이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욕심과 바람만을 요구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배려와 사랑도 표현합니다. “수고롭게 이방인인 저의 집에 오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한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종으로서 당신께서 하라고 하시면 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백인대장은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기다림으로 자신의 시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일까요? 기쁨과 행복의 기다림인가요? 아니면 고통과 초조함의 기다림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해마다 다가오는 성탄이기에 너무 익숙해진, 그래서 아무 느낌 없는 기다림인가요? 우리는 가난한 구유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나요? 아니면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크리스마스의 활기 속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나요? 어떤 기다림인지 잘 바라보아야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가난하게 오신, 나의 가장 가난한 마음에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려 봅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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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날과 그때에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빈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늘 깨어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3,14-16
1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15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6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3,12―4,2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4,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5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전례력으로 한 해의 시작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계획하여 봅니다. 어떤 일에는 더욱 집중하고, 어떤 일은 조금 내려놓기로 다짐도 합니다.
그렇게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 무엇을 ‘하기’만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일하기를, 놀기를, 사랑하기를,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기 원하는 만큼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그를 괴롭힙니다. 나도 이만큼 하니까 너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다그치기도 하지요.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다그치지 않고 내가 먼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기다리며 준비할 뿐입니다. 또한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당연히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일을 잘 하려면, 먼저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그 사랑을 얼마나 많이 표현하고 지켜 왔는지, 또한 다른 이의 사랑을 얼마나 욕심 없이 잘 받아들였는지를 먼저 바라볼 때, 더 잘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의 시작이자, 전례력으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먼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봅시다. 지나간 역경의 시간 속에서 미안하고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잘 할 수 있고 함께 그 시간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 오늘을 통하여 더욱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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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에서 본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5-27
15 나 다니엘은 정신이 산란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환시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16 그래서 나는 그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다가가서,
이 모든 일에 관한 진실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그 뜻을 나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17 “그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다.
1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
19 나는 다른 모든 짐승과 달리 몹시 끔찍하게 생겼고,
쇠 이빨과 청동 발톱을 가졌으며,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는 네 번째 짐승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었다.
20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에 있던 열 개의 뿔과
나중에 올라온 또 다른 뿔에 관한 진실도 알고 싶었다.
그 다른 뿔 앞에서 뿔 세 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다른 뿔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으며, 다른 것들보다 더 커 보였다.
21 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22 마침내 연로하신 분께서 오셨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권리가 되돌려졌다.
이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차지할 때가 된 것이다.
23 그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네 번째 짐승은 이 세상에 생겨날 네 번째 나라이다.
그 어느 나라와도 다른 이 나라는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짓밟으며 으스러뜨리리라.
24 뿔 열 개는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임금이다.
그들 다음으로 또 다른 임금이 일어날 터인데
앞의 임금들과 다른 이 임금은 그 가운데에서 세 임금을 쓰러뜨리리라.
25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떠들어 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마저 바꾸려고 하리라.
그들은 일 년, 이 년, 반년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지리라.
26 그러나 법정이 열리고 그는 통치권을 빼앗겨 완전히 패망하고 멸망하리라.
27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강의를 시작하기 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람들 앞에 서면 처음에는 언제나 긴장이 됩니다. 강의 준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처음 강의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긴장감과 떨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성호를 긋습니다. 그런데 긴장감 없이 어떤 일을 하다 보면 꼭 실수를 연발합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주 작은 실수 때문에 그 일을 완전히 망쳐 버리는 때도 있습니다. 긴장감은 어쩌면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하였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더 많이 준비하였기에, 세밀한 부분까지 알고 있기에,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도 평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방탕과 만취, 일상의 근심도 날마다 반복되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되면 실수하는 것 또한 일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 습관 때문에 누군가 상처받고 아파하지만, 그 상처와 아픔조차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한 번의 실수에도 고민하고 반성한다면, 긴장하며 일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또한 그 긴장감은 나의 약함을 바라보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고 반성을 하며 완벽해지려고 하지만, 결과를 돌아보면 언제나 부족함이 보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실상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기도를 할 때,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는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라고 시작합니다. 맡겨 드린다는 것은 우리 안에 열정을 키우는 일입니다. 사랑의 불, 일에 대한 열정, 그 열정을 통하여 실수가 있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의 가치를 전하는 당신의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깨어 바라보고 준비하고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긴장감을 오늘도 즐기기를 기도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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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다니엘은 밤의 환시 속에서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시며,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2ㄴ-14
나 다니엘이 2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3 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것은 날개가 뽑히더니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일으켜 세워진 다음,
그것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
5 그리고 다른 두 번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다.
한쪽으로만 일으켜져 있던 이 짐승은
입속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
6 그 뒤에 내가 다시 보니 표범처럼 생긴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가 네 개 달려 있고 머리도 네 개였는데,
그것에게 통치권이 주어졌다.
7 그 뒤에 내가 계속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 나왔다.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진 그 짐승은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그것은 또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으며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다.
8 내가 그 뿔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1 그 뒤에 그 뿔이 떠들어 대는 거만한 말소리 때문에 나는 그쪽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
12 그리고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으나 생명은 얼마 동안 연장되었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학 시절 독일에 도착하여 지도 교수님을 찾아뵙고 처음으로 논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들려주셨던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성경 속의 신학과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때, 오늘이 반영되지 않으면 죽어 계신 하느님, 성경이 쓰인 시대의 하느님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의 하느님을 늘 생각해야 한다는 충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오늘을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고 있는 삶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시대가 직면하여 있는 상황 속에 하느님께서 언제나 활동하시고 찾아오신다는 진리 때문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보아야 한다.’, ‘시대정신을 고려해라.’라는 말은 어쩌면 지금의 삶에 대한 충실함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 흐름을 쫓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변하지 않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살지 않는 일입니다. 자신의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합니다. 또한 자기 생각에 갇혀 여유롭지 못합니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는 지나온 길에 무엇이 어디에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천천히 산책을 하다 보면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위로를 얻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바라봄’은 ‘우리’를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그 공동체의 삶, 공동체 안에서의 ‘우리’라는 관계 ……. 이처럼 ‘우리’의 모습을 바라볼 때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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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2-28
그 무렵 12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니엘이 그의 하느님께 기도와 간청을 올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13 그래서 그들은 임금에게 다가가서 금령과 관련하여 말하였다.
“임금님, 앞으로 서른 날 동안
임금님 말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진다는 금령에 서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임금이 “그것은 철회할 수 없는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법에 따라 확실하오.”
하고 대답하자, 14 그들이 다시 임금에게 말하였다.
“임금님, 유다에서 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이
임금님께 경의를 표하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서명하신 금령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은 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15 임금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괴로웠다.
그는 다니엘을 살려 내기로 결심하고
해가 질 때까지 그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16 그러자 그 사람들이 임금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이 세운 금령과 법령은 무엇이든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법임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17 그리하여 임금이 분부를 내리자 사람들이 다니엘을 끌고 가서 사자 굴에 던졌다.
그때에 임금이 다니엘에게,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구해 내시기를 빈다.” 하고 말하였다.
18 사람들이 돌 하나를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아 놓자,
임금은 자기의 인장 반지와 대신들의 인장 반지로 그곳을 봉인한 다음,
다니엘에게 내린 어떠한 조치도 바꾸지 못하게 하였다.
19 그러고 나서 임금은 궁궐로 돌아가 단식하며 밤을 지냈다.
여자들도 자기 앞으로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20 새벽에 날이 밝자마자 임금은 일어나 서둘러 사자 굴로 갔다.
21 다니엘이 있는 굴에 가까이 이르러, 그는 슬픈 목소리로 다니엘에게 외쳤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내실 수 있었느냐?”
22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23 저의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그분 앞에서 무죄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금님, 저는 임금님께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24 임금은 몹시 기뻐하며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 올리라고 분부하니,
사람들이 그를 굴에서 끌어 올렸다.
다니엘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기의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25 임금은 분부를 내려, 악의로 다니엘을 고발한 그 사람들을 끌어다가,
자식들과 아내들과 함께 사자 굴 속으로 던지게 하였다.
그들이 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달려들어
그들의 뼈를 모조리 부수어 버렸다.
26 그때에 다리우스 임금은 온 세상에 사는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렸다.
“그대들이 큰 평화를 누리기 바란다. 27 나는 칙령을 내린다.
내 나라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에서는
누구나 다니엘의 하느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느님,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나라는 불멸의 나라,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어진다.
28 그분은 구해 내시고 구원하시는 분,
하늘과 땅에서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들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올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누워 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누운 채로 눈을 뜨지 못한다면 …….’ 대개 두려움이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다른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생각에서 찾아옵니다. 그 힘에 우리는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잃으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고, 내가 이루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에게 가장 소중했던 도시인 예루살렘의 멸망, 임신한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배 속의 아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젖먹이 아이 ……, 그 소중함을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두려움이 닥쳐옵니다. 나약한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거대한 자연의 힘이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는 공포가 밀려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을 온몸으로 맞이할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요?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삶이 행복했다고, 미안하다고 안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종말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 소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셔서 행하시는 그 전능한 힘에 온몸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모든 것을 잃게 하는 힘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희망의 힘임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소중함을 잊지 마십시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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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다니엘은 벨사차르 임금의 잔치에 나타난 손가락이 쓴 글자를 풀이하며, 바빌론 왕국의 운명을 예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 때문에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하시며,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5,1-6.13-14.16-17.23-28
그 무렵 1 벨사차르 임금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벌이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2 술기운이 퍼지자 벨사차르는 자기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들을 내오라고 분부하였다.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시려는 것이었다.
3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곧 하느님의 집에서 가져온 금 기물들을 내오자,
임금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4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하였다.
5 그런데 갑자기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임금은 글자를 쓰는 손을 보고 있었다.
6 그러다가 임금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떠오르는 생각들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이다.
허리의 뼈마디들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13 다니엘이 임금 앞으로 불려 왔다. 임금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로 나의 부왕께서 유다에서 데려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인가?
14 나는 그대가 신들의 영을 지녔을뿐더러,
형안과 통찰력과 빼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으로 드러났다는 말을 들었다.
16 또 나는 그대가 뜻풀이를 잘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대가 저 글자를 읽고 그 뜻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대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고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겠다.”
17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선물을 거두시고 임금님의 상도 다른 이에게나 내리십시오.
그래도 저는 저 글자를 임금님께 읽어 드리고 그 뜻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23 하늘의 주님을 거슬러 자신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주님의 집에 있던 기물들을 임금님 앞으로 가져오게 하시어,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그것으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손에 잡고 계시며
임금님의 모든 길을 쥐고 계신 하느님을 찬송하지 않으셨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손을 보내셔서 저 글자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25 그렇게 쓰인 글자는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26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임금님 나라의 날수를 헤아리시어
이 나라를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27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28 ‘프레스’는 임금님의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몇 년 전 피정 때 산책을 하면서 선배 신부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납니다. “신부는 참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하고 제가 말하였더니, 선배 신부님이 “어쩌면 너도 나를 참아 주며 살았겠지만, 나도 너를 견디며 살았다! 니만 견딘 것이 아니여!”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참고 인내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상대가 나를 더 많이 참아 주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인내합니다. 삶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 앞에서 비굴하게 견뎌 내고, 곁에 있는 가족들은 늘 마주하여야 하기에 또 서로를 견뎌 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아무 일 없는 듯 견뎌 내기도 하고, 모든 것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상대를 견뎌 내기도 합니다. 분란과 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참기도 하고, 나보다 내가 바라보는 이가 더 행복해지게 하려고 인내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내하고 참고 견뎌 내는 이유’입니다.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인내는 자신을 위한 인내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인내는 한계가 있지만, 사랑을 위한 인내는 한계가 없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성모님께서 그러셨으며 우리의 부모님이 그러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아프지 않아서 두렵지 않아서 고통을 참아 냈던 것이 아닙니다. 그 고통보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더 크기에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내의 이유가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그 사랑의 마음은,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이 참아 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행복이 되게 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더 많이, 더 자주, 더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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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다니엘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꿈을 풀이하며, 하느님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 주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다 허물어질 것이라고 하시며, 그 전에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31-45
그 무렵 다니엘이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말하였다.
31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무엇인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큰 상이었습니다.
그 거대하고 더없이 번쩍이는 상이 임금님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시무시하였습니다.
32 그 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청동이며,
33 아랫다리는 쇠이고, 발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34 임금님께서 그것을 보고 계실 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떨어져 나와,
쇠와 진흙으로 된 그 상의 발을 쳐서 부수어 버렸습니다.
35 그러자 쇠, 진흙, 청동, 은, 금이 다 부서져서,
여름 타작마당의 겨처럼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리니,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을 친 돌은 거대한 산이 되어 온 세상을 채웠습니다.
36 이것이 그 꿈입니다. 이제 그 뜻을 저희가 임금님께 아뢰겠습니다.
37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임금들의 임금이십니다.
하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께 나라와 권능과 권세와 영화를 주셨습니다.
38 또 사람과 들의 짐승과 하늘의 새를,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 다 임금님 손에 넘기시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임금님께서 바로 그 금으로 된 머리이십니다.
39 임금님 다음에는 임금님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청동으로 된 셋째 나라가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40 그러고 나서 쇠처럼 강건한 넷째 나라가 생겨날 것입니다.
쇠가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리듯이,
그렇게 으깨 버리는 쇠처럼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고 깨뜨릴 것입니다.
41 그런데 일부는 옹기장이의 진흙으로,
일부는 쇠로 된 발과 발가락들을 임금님께서 보셨듯이,
그것은 둘로 갈라진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쇠와 옹기 진흙이 섞여 있는 것을 보셨듯이,
쇠의 강한 면은 남아 있겠습니다.
42 그 발가락들이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된 것처럼,
그 나라도 한쪽은 강하고 다른 쪽은 깨지기가 쉬울 것입니다.
43 임금님께서 쇠와 옹기 진흙이 섞여 있는 것을 보셨듯이
그들은 혼인으로 맺어지기는 하지만,
쇠가 진흙과 섞여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 결합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44 이 임금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그 왕권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어 멸망시키고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45 이는 아무도 돌을 떠내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산에서 떨어져 나와,
쇠와 청동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수는 것을 임금님께서 보신 것과 같습니다.
위대하신 하느님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임금님께 알려 주신 것입니다.
꿈은 확실하고 그 뜻은 틀림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텔레비전에서 강의하는 아들 신부의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지인이 연락을 해 왔다며 부모님께서 웃으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속 썩이던 하나뿐인 아들이 신부가 되었고 다른 이들이 누리는 행복마저도 포기하게 만들었기에, 부모님께는 그 아들이 십자가였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때문에 부모님께서 오늘은 행복해하십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무겁고 힘겨운 십자가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십자가 때문에 행복해하고 삶의 이유를 찾기도 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성전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종교가 그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기에 성전 없는 삶은 상상도 못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성전을 지었고, 유다인이라면 누구나 성전을 민족의 자긍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이 무너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자신들의 삶의 중심이고 자랑이며 자부심인 그 성전이 무너지면서 재난이 시작되고, 또한 그 재난에서 구하여 줄 그리스도, 구원자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고 하십니다. 전쟁과 반란, 큰 지진과 전염병의 표징 또한 종말의 징조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싸우며, 누군가로부터 배신당하고 또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를 외면하고 배신합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잃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것이 십자가가 되어 우리의 어깨를 끊임없이 짓누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종말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두려움보다는 그 삶에서 움트는 또 다른 희망을 이야기하십니다. 당신의 가치로, 당신의 사랑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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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길 젊은이들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뽑힌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궁핍하지만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헌금함에 다 넣은 과부를 보시고 칭찬하신다(복음).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6.8-20
1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2 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 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기물들은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었다.
3 그러고 나서 임금은 내시장 아스프나즈에게 분부하여,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4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5 임금은 그들이 날마다 먹을 궁중 음식과 술을 정해 주었다.
그렇게 세 해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임금을 섬기게 하였다.
6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다.
8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자기가 더럽혀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내시장에게 간청하였다.
9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내시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다.
10 내시장이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주군이신 임금님이 두렵다.
그분께서 너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하셨는데,
너희 얼굴이 너희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못한 것을 보시게 되면,
너희 때문에 임금님 앞에서 내 머리가 위태로워진다.”
11 그래서 다니엘이 감독관에게 청하였다.
그는 내시장이 다니엘과 하난야와 미사엘과 아자르야를 맡긴 사람이었다.
12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
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13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14 감독관은 그 말대로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해 보았다.
15 열흘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들이 궁중 음식을 먹는 어느 젊은이보다
용모가 더 좋고 살도 더 올라 있었다.
16 그래서 감독관은 그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과 술을 치우고 줄곧 채소만 주었다.
17 이 네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18 젊은이들을 데려오도록 임금이 정한 때가 되자,
내시장은 그들을 네부카드네자르 앞으로 데려갔다.
19 임금이 그들과 이야기를 하여 보니, 그 모든 젊은이 가운데에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었다.
20 그들에게 지혜나 예지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물어보아도,
그들이 온 나라의 어느 요술사나 주술사보다 열 배나 더 낫다는 것을
임금은 알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일 미사를 혼자 봉헌하기 싫어 옆 본당을 찾습니다. 제단이 아닌 신자석에 앉아 조용히 미사를 준비할 때면 또 다른 느낌이 듭니다. 미사가 시작되고 예물 봉헌을 할 때 순간 고민합니다. 평소에 헌금을 봉헌하지 않아 봉헌금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색해서입니다. 그러나 봉헌을 하지 않고 자리에 그냥 앉아 있는 것이 더 어색할 것 같아 봉헌을 합니다. 잠시 본당 사목의 소임을 맡았던 때 교무금으로 십일조를 하였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봉헌금과 교무금을 냈던 마음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부끄럽습니다. 봉헌금을 낸 이유가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나 싶기 때문입니다. 교무금도 좋은 의도라기보다는 ‘본당 신부도 교무금을 낸다. 그러니 당신들도 십일조의 원칙에 따라 교무금을 내라.’ 하는 암묵적 지시였는지도 모릅니다.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봉헌금이 많고 적음을 떠나 그들의 마음과 자세에 집중하십니다. 가난한 과부가 넣었던 렙톤 두 닢은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1,500원 정도(1렙톤은 당시 하루 일당인 1데나리온의 1/128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보시고는 보잘것없지만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봉헌하는 마음, 그리고 많이 내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신권을 쓰지 않고 모아 두셨다가 봉헌금으로 내셨습니다. 깨끗하고 구겨지지 않은 돈이 없을 때에는 다림질을 해서 봉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봉헌의 마음과 자세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무엇을 봉헌하는지, 어떻게 봉헌하는지, 그리고 그 마음과 의도는 어떠한지를 되돌아봅시다. 그런 우리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오늘 복음 안에서 들어 봅시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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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 앞으로 인도되는 모습을 본다(제1독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모든 눈이 보리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당신께서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나셨고,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3-14
13 내가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5ㄱㄷ-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5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3ㄴ-37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33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당에 들어서서 머리와 가슴, 어깨에 엄숙히 십자가를 새기고 십자가와 제대를 바라보며 깊이 머리를 숙입니다. 그리고 커다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감사를, 때로는 염원을, 때로는 아픔과 고통을 그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몸과 마음에 품고 새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십자가에 매달아 조롱하고 심판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아 갔다고 여기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여 행동하게 하고는 자신은 고귀한 척, 정당한 척합니다. ‘군사들처럼’ 자기보다 힘없고 나약한 사람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빈정거립니다. ‘백성들처럼’ 사실과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낙인을 찍어 소문을 만들며 재미 삼아 험담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처럼’ 자신의 잘못은 바라보지 않고 누군가 자기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그의 잘못만을 탓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조롱하고 빈정거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예수님을 조롱하고 심판합니다. 약하다는 이유로, 나보다 잘못을 많이 한 것 같다는 이유로, 내 것을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매달아 빈정거리며 조롱하고 못 박아 죽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오늘은, 십자가 위에서 조롱받으신 분께서 바로 우리의 임금이심을 인정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빌라도처럼 말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짓밟았던 이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신 분을 임금으로 여기고 충실히 섬기기를 약속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셨던 그 십자가의 왕으로서의 삶을 우리 또한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날입니다. 군림하는 왕이 아닌 십자가의 왕으로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최종훈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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