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2티모 1,8 참조) 하며, 자신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복음 선포의 임무를 맡았다고(티토 1,3 참조) 한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고을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5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1,1-5
1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2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3 사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복음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선포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4 이러한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5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티모테오 성인과 티토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사랑한 제자들로, 사도의 선교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협력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다음 날인 오늘 두 성인의 축일을 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명의 제자를 뽑으시어, 당신께서 몸소 가시려는 곳으로 둘씩 짝지어 보내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복음 선포로 하느님 나라에 모아들여야 할 온 세상 백성이 수확물에 비유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온 세상을 향하는 커다란 수확의 시작이었고, 이제 이를 함께할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 성인과 티토 성인을 각각 “사랑하는 아들”과 “착실한 아들”이라 부릅니다. 바오로 사도가 두 성인과 함께 펼쳤던 활발한 선교 활동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가는 곳 어디에서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마음으로 함께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험도, 칼도, 그 무엇도 제자들의 복음 선포를 향한 열정을 막지 못하였을 것입니다(로마 8,35 참조).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복음 선포의 여정은 우리가 감히 상상도 못할 어려움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복음 선포를 위하여 파견되는 제자들은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으로 무장하여 온전히 자신들의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열두 제자, 일흔두 제자, 바오로, 티모테오, 티토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름 모를 제자가 흘린 땀과 피를 기억하며, 우리도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으로 복음 선포에 투신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백성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신자들을 박해하던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나 주님을 전하는 증인이 된 사연을 들려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2,3-16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1-22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21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놀라며,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2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차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명하여,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다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 선포는 의무이며, 그 대상에 경계와 구별이 없다는 이 말씀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 선포에 자신의 삶을 바친 바오로가 떠오릅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유다 사람”으로 태어나,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은 바오로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던 박해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오늘 독서가 전하는 부활하신 예수님 체험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번쩍이는 커다란 빛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특별한 체험으로 바오로는 ‘그리스도 박해자’에서 ‘그리스도 선포자’로 바뀝니다. 작은 습관 하나도 바꾸기 쉽지 않은 우리이기에,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뀐 이름처럼 변화된 그의 삶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강렬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내며, 회개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회개는 자신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이 만나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회개의 결과는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나는 회개하였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변화하였는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과 그의 열정적인 복음 선포를 기억하며, 우리도 ‘회개’하는 신앙인, ‘선포’하는 신앙인, ‘변화’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와 함께 고백합시다.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필리 3,10).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사울이 죽자 원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5,1-7.10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탄은 끝장이 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3,8-12)와 복음(요한 15,9-17)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마귀들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마르 1,24) 또는 “하느님의 아드님”(마르 3,11)이라는 예수님의 신원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느님을 따른다는 율법 학자들은 이 사실을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에 사로잡히시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고 모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나라나 한 집안이 갈라서면 유지될 수 없듯이,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버텨 내지 못한다고 하시며 그들의 모순을 폭로하십니다.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마귀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드십니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이들을 고치신 기적들은 ‘힘센 자’인 마귀를 ‘더 힘세신’ 당신께서 묶어 놓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사탄이 결코 맞설 수 없는 힘, 바로 하느님께서 지니신 구원의 힘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행위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강한 의지이며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그분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율법 학자들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모함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에즈라 사제가 나무 단 위에 올라 백성 앞에서 율법서를 펴자, 레위인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준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신다(복음).

 

제1독서

<레위인들은 율법서를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 느헤미야기의 말씀입니다.8,2-4ㄱ.5-6.8-10
그 무렵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3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4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5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6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8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12-30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4; 4,14-21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4,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은 뒤(느헤 2,17; 6,15 참조), 율법 학자이며 사제인 에즈라에게 하느님의 율법서를 읽어 달라고 청합니다(느헤 8,1 참조). 에즈라와 레위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읽어 주고 가르치며 설명합니다. 무너진 도시를 복구하는 외적인 작업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되찾는 내적인 작업이 더욱 중요합니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백성은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잘못을 뉘우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느헤미야 총독과 에즈라 사제와 레위인들은 “오늘은 ……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므로 슬퍼하거나 울지 말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힘이라고 격려합니다.
나자렛 회당에서 또 다른 기쁨이 선포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 성경 말씀은 “주님의 은혜로운 해”에 관한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느님 말씀은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약속일뿐만 아니라, 확실한 실재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안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게 두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이천 년 전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된 ‘오늘’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오늘이 되고,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의 ‘오늘’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 이루어졌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단식하며, 애가를 지어 부른다(제1독서). 예수님의 친척들은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여 그분을 붙잡으러 나선다(복음). 

 

제1독서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 쓰러졌는가?>
▥ 사무엘기 하권의 시작입니다.1,1-4.11-12.19.23-27
그 무렵 1 다윗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돌아와 치클락에서 이틀을 묵었다.
2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사울의 진영에서 찾아왔다. 그가 다윗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자,
3 다윗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다윗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해 보아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싸움터에서 군사들이 달아났습니다.
또 많은 군사가 쓰러져 죽었는데,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12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
다윗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23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24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25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26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27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서 열두 사도를 세우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는 “집으로” 가십니다. 그 집은 아마도 카파르나움에 있는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마르 1,29)일 것입니다. ‘집’이라는 낱말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공동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그분을 붙잡으러 나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분께서 미치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더 활동하시지 못하도록 붙잡으러 나섰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예수님의 친척들이 보인 태도는 그분의 고향 사람들이 보인 태도와(마르 6,1-6 참조)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신앙을 드러냅니다. 예언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네 형제들과 네 아버지 집안조차도 너를 배신하고 너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는구나”(예레 12,6).
마르코 복음서에서, 오늘의 짧은 복음은 당신을 비방하는 율법 학자들에게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마르 3,22-30 참조)과 참가족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마르 3,31-35 참조)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집에 도착하였을 때 당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사도들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파견되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참된 가족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그분 안에서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예수님의 가족으로 살아갑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놓아주며,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고자,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24,3-21
그 무렵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1,26-31)와 복음(마태 13,44-4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산’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기도하는 장소입니다(마르 6,46 참조). ‘원하시는’ 열둘을 ‘가까이 부르시는’ 행위는 예수님의 주도권을, 그분께 ‘나아가는’ 행위는 사도들의 순명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장면을 상상하면 참으로 장엄하고 거룩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파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사명이 파견의 사명보다 먼저 언급된 것이 인상적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친교를 나누며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배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지냄’은 사도들의 정체성이며, 파견 활동의 원천이 됩니다.
파견에는 ‘선포하는 활동’과 ‘마귀들을 쫓아내는 활동’이 포함됩니다. 열두 사도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선포하고, 마귀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열두 사도가 해야 하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같습니다. 앞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39).
예수님의 사명은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를 살아가는 그분의 제자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이웃에게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피신시키고,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마음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제1독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고, 그분께서는 더러운 영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셨다(복음).

 

제1독서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8,6-9; 19,1-7
그 무렵 6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울 임금을 맞았다.
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19,1 사울이 아들 요나탄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무척 좋아하였기 때문에,
2 이를 다윗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니, 내일 아침에 조심하게.
피신처에 머무르면서 몸을 숨겨야 하네.
3 그러면 나는 자네가 숨어 있는 들판으로 나가,
아버지 곁에 서서 자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겠네.
그러다가 무슨 낌새라도 보이면 자네에게 알려 주지.”
4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좋게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님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임금님께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가 한 일은 임금님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였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임금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공연히 다윗을 죽이시어,
죄 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6 사울은 요나탄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 하고 맹세하였다.
7 요나탄은 다윗을 불러 이 모든 일을 일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을 사울에게 데리고 들어가, 전처럼 그 앞에서 지내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7-12
그때에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8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활동을 요약하는 오늘 복음은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오고 있음을 전합니다. “큰 무리”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되며, 적어도 외적으로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활동이 성공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무리는 “갈릴래아에서 ……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 곧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의 거주 지역을 가리지 않고온 이스라엘 방방곡곡에서 몰려들었습니다. 이는 어제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헤로데 당원들과 예수님을 없애기로 모의한 모습과 대비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그분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을 피하시려고 제자들에게 거룻배 한 척을 준비하라고 이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를 고쳐 주셨기에, 누구나 그분께 손을 대려고 밀려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엎드려 소리 지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처음 나옵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침은 신앙에서 나온 고백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외침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들을 통하여 당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의 정체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 안에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도 십자가 죽음의 길을 함께 걸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소년 다윗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필리스티아전사 골리앗을 이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완고함에 슬퍼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필리스티아 사람을 눌렀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7,32-33.37.40-51
그 무렵 32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37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40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
41 필리스티아 사람도 방패병을 앞세우고 나서서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은 다윗을 보더니,
그가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겼다.
43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 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
47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49 그러면서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51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마르 2,28)이라는 어제 예수님의 선포가 오늘 치유 기적으로 증명됩니다. 이 기적은 유다인들에게 중요한 시간(안식일)과 공간(회당)에서 일어납니다. 
안식일, 어느 회당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과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살았을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가운데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이 질문은 ‘선한 일’이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율법의 맹목적인 준수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안식일은 선한 일을 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회복시켜야 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시려는 일입니다. 
“손을 뻗어라.” 이렇게 치유는 안식일을 위반하는 구체적인 행동 없이 권위 있는 말씀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곧바로 사형 권한을 지닌 헤로데의 추종자들과 예수님을 없애기로 모의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남을 해치는 일”, “죽이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좋은 일”, “목숨을 구하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사람을 위하여 생긴”(마르 2,27)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이 누리게 된 자유와 구원을 기억하는 날입니다(신명 5,12-15 참조). 우리도 모든 죄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져, 우리 안에 담긴 하느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사무엘을 이사이에게 보내시어 그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은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6,1-13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제가 어떻게 갑니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들으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여라.
3 그러면서 이사이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다음에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 주는 이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은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그들은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사이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9 이사이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10 이렇게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팠는지 밀 이삭을 뜯었습니다. 평소라면 이웃의 밭에서 낫이 아닌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신명 23,26 참조). 문제는 이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안식일에는 추수 행위가 금지되는데, 밀을 뜯는 것이 추수 행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비판하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본정신을 밝히십니다. 먼저,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사제만 먹을 수 있는 제사 빵을 먹었던 일화(1사무 21,1-7 참조)를 상기시키십니다. 안식일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 이 일화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준수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더 먼저라는 해석을 보여 주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율법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많은 법과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법과 규정을 따르는 외적인 문제로 이웃을 단죄하기도 합니다. 법과 규정의 준수와 함께, 그 안에 담긴 본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의 법과 규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연결되는 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묵시 1,10)을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거룩한 날로 지냅니다.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때, 비로소 그날이 거룩한 날이 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말씀의 초대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배척한 사울의 행동 때문에 주님께서 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시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고 하시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5,16-23
그 무렵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17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8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19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21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6,10-13.18)와 복음(마태 19,16-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자신들의 스승처럼 단식하였고(마태 9,14 참조), 바리사이들은 속죄일 외에,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였습니다(루카 18,12 참조). 물론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였습니다(『디다케』, 8,1 참조).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신랑과 손님을 비유로 들어,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필요가 없다고 변호하십니다. 혼인 잔치의 신랑은 예수님이시며 손님은 제자들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구원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오신 ‘지금’이 바로 구원의 시간임을 드러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사 65,17)을 창조하시고, “새 마음”과 “새 영”(에제 36,26)을 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혼인 잔치는 구원의 시간, 기쁨의 시간이기에 슬퍼할 수 없고(마태 9,15 참조), 단식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도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단식할 것입니다. 
헌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지 않으며, 헌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주어진 새로운 것, 곧 그분의 말씀과 행적 안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하느님 나라를 강조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낡은 사고와 습관 안에 담을 수 없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회개와 이를 통하여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 안에 그분의 나라를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2코린 5,17-18).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Posted by 에파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