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치며 숨을 거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생명의 빵이시라며, 당신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7,51─8,1ㄱ

그 무렵 스테파노가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말하였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

8,1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5

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30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요한 복음서 6장은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이야기,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이야기,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의 배경은 갈릴래아 호수 주변입니다. 빵의 기적은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갈릴래아 호수 동쪽 지역, 벳사이다에서 이루어집니다. 저녁이 되어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널 때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다음 날 호수의 서쪽 지역이며 유다인들이 모여 사는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당신께서 생명의 빵이시라고 가르치십니다.
빵의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기적,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이 이교도 지역에서 유다인 지역으로 물을 건너 공간을 이동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체험을 연상하게 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간 것과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기적들이 일어난 시기도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요한 6,4)였습니다.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밤 짐승의 희생으로 얻은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이 죽음은 성찬례의 의미를 설명해 주며, 예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심을 빵의 표징을 통하여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7.29)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군중은 의심하며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요한 6,30-31). 군중은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만나를 주셨듯이, 새로운 메시아는 하늘에서 만나보다 더 큰 풍요를 주리라고 여겼기에 예수님께 더 큰 일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생명의 빵”이요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나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빵이었다면, 당신께서는 온 세상을 위한, 온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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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던 이들은 그의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 없게 되자, 그를 최고 의회로 끌고 가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모함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 삶의 결정적인 방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뵈려고 성경 공부를 하고, 열심히 미사 참례하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만나 뵌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병자들을 만나면 그 병을 고쳐 주시고, 죄인을 만나면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드시고자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다스리는 세상, 곧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자기 삶의 방향으로 정하는 것이 신앙인이 지닐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또한 예수님을 만나 세상과 삶에 대한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 삼위일체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사랑의 구조를 가르쳐 주십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이’, 곧 ‘주는 이는 받는 이를 필요로 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구조로 보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시듯 하느님께서는 인간도 필요하십니다. 오로지 내어 주시고자 전능하시고 완벽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는 그토록 귀한 존재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도 하느님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서로 필요합니다. 이 사랑의 구조로 이웃을 바라보고, 세상과 자연을 바라볼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이제 이웃, 자연, 세상을 향하여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이웃과 세상을 위하여 내어 준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드린 것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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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백성에게, 그들이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한다(제1독서).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시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비시자 그들은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베드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학교에 입학한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앞으로 4년 뒤면 신부가 될 터인데, 지금처럼 살아도 될까? 아직 아무런 하느님 체험도 없고, 하느님도 알지 못하는데 하느님을 전할 수 있을까?’ 이런 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마음을 두드리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당시 신학교 학장 신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영성 생활은 영적 독서(Lectio Divina)와 함께 시작되고, 영적 독서를 끝내는 순간 끝난다. 먼저 성경을 읽어라.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찾아라. 그 찾은 말씀을 되새겨라. 그리고 그 말씀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라.” 그래서 다음 날부터 신약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말씀이 있으면 밑줄을 긋고 종이에 써서 그 말씀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성당으로 가는 시간뿐 아니라, 수업을 듣기 전에 노트에 그 말씀을 가장 먼저 썼습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되뇌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되새기며 살다 보면 그 말씀과 꼭 맞아떨어지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그 말씀대로 살아 보고자 더욱 노력하였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외우며 그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깨달음이 올라왔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계시는구나! 그냥 저 멀리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라 바로 곁에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구나! 그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우리도 노력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내 말 안에 머무르면”을 『공동 번역 성서』에서는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읽고 새김’으로써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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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식탁 봉사를 맡기고,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기로 한다(제1독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한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16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18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

19 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제품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사제로 살 수 있을까? 제의를 입은 채 관에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 할수록 자신은 더 없어지고 두려움만 점점 커져 갔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나 저의 첫 질문은 ‘성경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찾았는가? 그 말씀을 외우고 되새기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가?
그렇게 성경을 다시 읽어 나가다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병자들의 치유와 빵의 기적을 옆에서 직접 보았음에도 큰 파도에, 또 그 어둠 속에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고 소리 지르는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기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고자 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많이 만나 주셨는데도 ‘사제품’이라는 큰 관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네가 울부짖을 때마다, 네가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마다 만나주었던 나다. 나는 살아 있는 하느님이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 하느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는데 왜 두려워하느냐?” 이 말씀이 마음속에서 울리는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고, 가끔 스멀스멀 그 두려움이 피어올라 올 때면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묵상하던 가운데 ‘그렇구나.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 하자 배가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은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려 노력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가려는 곳, 하느님 품 안에 가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어느덧 사제로 산 지 26년이 되어 갑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시간이 가겠지요. 내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려고 노력만 한다면 말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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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사도들은 매질을 당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의회에서 물러 나왔지만,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라고 날마다 선포한다(제1독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을 보고, 군중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이방인들의 도시 벳사이다로 가십니다.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아누워 있던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는 기적을(요한 5,9 참조) 목격한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 욕망은 빵의 기적을 체험한 뒤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욕망을 채우는 길이 아니라, 당신을 내어 주시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필립보를 시험하시며 당신의 길을 뚜렷이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필립보가 대답합니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필립보는 그 많은 돈이 어디 있으며, 그 돈을 누가 내어놓을 것이며, 그렇게 한들 턱없이 모자랄 것이라고 계산하는 세상의 논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가진 보잘것없이 적은 것으로, 내어 주시는 하느님의 논리를 보여 주시고자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특이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혼자 하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이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어떤 일을 하도록 주님께서 사람을 보내 주시는데, 부자보다는 가난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시간, 재능, 그리고 재물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이를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어놓은 것을 가지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은 내어놓음, 감사의 기도, 그리고 나눔으로 이루어집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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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사도들은 대사제의 심문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삼아 당신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셨는데, 성령께서 이 일의 증인이시라고 대답한다(제1독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증언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하느님이시지만 우리처럼 사람이 되셨기에 당신께서 몸소 하느님 아버지와 나누신 친교를 우리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 예수님의 관계,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오늘 복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와 마치실 때 삼위일체 하느님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 
예수님께서 증언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1요한 4,16 참조). 사랑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는 이는 받는 이를 필요로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주시는 분이신 아버지께서 사랑을 주시려면 이를 받으실 아드님께서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주시고자 하실 때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아드님 손에 내주십니다. 그러면 아드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고 다시 아버지께 온전히 내어 드리십니다. 순수한 영이신 아버지와 아드님께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내어 주시고 또 온전히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안에 계시어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 일치가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그 아드님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여,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생명을 거부하여 죽음의 어둠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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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자, 사도들은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친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외아들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기쁜 말씀입니까? 믿는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하느님,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비둘기 모양의 성령께서 내려오시며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 1,11)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 주시는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본성으로 모든 것을내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 내어 주시는 분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까지 내어 주십니다. 당신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를 닮은 아드님께서는 이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찾아 만나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것을 온전히 내어 주십니다. 마침내 당신 생애의 결정체인 몸을 내어 주실 뿐 아니라, 목숨까지 내어 주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의 하느님이시며, 그 사랑의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우리는 이제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아파하는 이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말함으로써,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주님께서 저를 죽기까지 사랑하심을 받아들입니다.’라는 뜻으로 십자 성호를 그어 몸에 새깁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아멘.”이라고 응답함으로써 ‘저도 이웃에게 나아가 내어 주겠습니다.’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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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른 입교 예식의 ‘맞이하는 예식’에서 주례자와 세례 후보자들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신앙을 청합니다.’ ‘신앙이 그대에게 무엇을 줍니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영원한 생명은 참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님으로 또 유형무형한 만물의 주님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대가 오늘 세례를 청하면서도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분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하였다면 영원한 생명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그대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미 들었고,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기로 결심하였으며, 형제들과 일치하여 기도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신자가 되려고 행한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어른 입교 예식』, 247-248항).
우리가 성당에 다닌다고 말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무엇일까요? 요한 복음서 17장 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알다’라는 동사가 현재형이기에, 영원한 생명이란 먼 훗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그분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온 마음과 온몸, 온 생애를 통하여 깨우쳐 상대와 온전히 결합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의 삶을 살고자 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충만하게 참여하여 그분을 닮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의 말씀’(요한 6,68 참조)을 듣고 지키며, 또한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써(요한 6,57 참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내어놓으신 헌신적인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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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말을 들은 동료들은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하고,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인 니코데모가 찾아오자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그 무렵 23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에게 가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24 동료들은 그 말을 듣고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아뢰었다.

“주님,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25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주님의 종인 저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6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모였구나.’

27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분,

곧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없애려고,

다른 민족들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이 도성에 모여,

28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손과 주님의 뜻으로 예정하신 일들을 다 실행하였습니다.

29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0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31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가끔 신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습니다. “신부님, 도대체 왜 그러세요?” 그러면 저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변명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보고 배운 신부의 모습은 가부장적인 팔·구십년대 사회에서 사목하던 모습입니다. 눈으로 보고 배운 모습은 아주 가까이 있고, 말씀으로 배웠던 ―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 목자의 모습은 아직도 머리에만 있어 몸으로 옮겨 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여 변하고자 노력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다음 질문을 깊이 한번 생각해 보고 대답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이고, 가장 많이 본 모습은 무엇입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보고 배운 것은 무엇이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입니까? 방송이나 다른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성당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것에서 어떤 영향을 받아 왔고, 그것들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이루는 데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을 닮은 모습일까요? 오늘 본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가 이 땅의 부모에게 받은 모습은 벗어 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으로 살고자 함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신앙의 완성이요 구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완성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세례의 삶으로 묵은 인간은 죽고 새로이 태어나도록, 사랑의 삶으로 태어나도록 노력합시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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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제1독서). 요한 사도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긴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비시고,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던 토마스에게도 나타나시어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진나라 환온이 촉을 정벌하려고 군사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중에 양쯔강의 삼협이라는 곳을 지났습니다. 그곳을 지나면서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왔는데, 그 어미 원숭이가 환온이 탄 배를 쫓아 백여 리를 슬피 울며 뒤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배를 강기슭에 대자 어미 원숭이가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올랐지만 오르자마자 죽고 말았답니다. 병사들이 하도 이상하여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토록 창자가 끊어질 만큼 자식을 잃은 슬픔이 컸던 것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자비’는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으로, 성경에서는 ‘가엾이 여기다’로 자주 표현됩니다. ‘가엾이 여기다’는 그리스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인데, 오장육부, 곧 창자 등을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래서 자비는 ‘애끊는 마음’, ‘단장의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자비의 마음을 아주 잘 나타내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고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살피는 사마리아인의 마음입니다(루카 10,33 참조). 또 되찾은 아들의 이야기에서, 유산을 다 탕진해 버리고 굶어 죽게 되어 힘없이 돌아오는 작은아들을 멀리서 발견하고는 한숨에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 맞추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루카 15,20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동, 당신의 온 인격으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십니다. …… 자비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 주는 길이 되어 우리가 죄인임에도 영원히 사랑받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줍니다. …… 우리가 먼저 자비를 입었으므로, 우리도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고 …… 용서하고 자신을 내어 주라고 요청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서철 바오로 신부)

 

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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