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고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한다(제1독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18-21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여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장소를 정하고 비행기표를 사고, 잠은 어디서 잘지, 먹는 것은 어떻게 할지, 꼭 찾아보아야 할 곳은 어디인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3박 4일의 여행을 알차고 의미 있게 만들려고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일주일의 휴가와 휴가비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도 계획을 열심히 세워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만일 한 달이 주어진다면? 한 달의 계획도 세울 것입니다. 만일 일 년이 주어지면? 백 년이 주어지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제 인생의 계획이자 목표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병들고 늙고 죽습니다. 그렇게 변하는 인생길에서 제가 찾은 별은 하느님입니다. 살아 계시고, 사랑이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을 닮고자 하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닮은 사람, 곧 ‘성인’이 되고자 하는 것의 참의미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글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다른 이를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다’라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본래에는 하느님만이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우선 상기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한 인격이나 물건을 하느님의 소유가 되도록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 서로 보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것에서 따로 떼어 내어 구분하고 인간의 사적인 영역에서 ‘따로 떼어 놓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 영역으로의 이 ‘넘겨 줌’에는 ‘보냄’, 곧 파견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께 바쳐졌기에 성별된 현실, 성화된 인격은 다른 이들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바쳐집니다. 하느님께 바쳐 드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베네딕토 16세, 『베네딕토 16세 기도』, 203-204면 참조).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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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죄를 용서받은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 안에 영원히 머물러 있도록 그분의 뜻을 실천할 것을 권고한다(제1독서). 한나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온갖 정성을 쏟으며 살아온 예언자로서, 아기 예수님을 보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12-17
12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13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4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36-40
그때에 36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탈리아로 유학 간 첫 학기에 유독 어려운 과목이 있었습니다. ‘기업 윤리’라는 과목이었는데, 언어도 문제였지만 토론 수업이라 도무지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번번이 한마디 말도 못하고, 그저 멋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날 때쯤 되자 교수님도 답답하셨는지 이렇게 놀리셨습니다. “자네는 성탄 방학이 되면 시칠리아섬의 작은 본당으로 봉사하러 갈 것이네. 가서 고해성사도 주고, 성탄 밤 미사 강론을 할 텐데, 신자들 앞에서 떠듬거리며 ‘오늘 밤은 성탄입니다.’ 하고 한마디만 하면 신자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날 것일세.”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신부인 나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놀리다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리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영성 지도를 받는 날이었는데, 지도 신부님을 만나자마자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신부님은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바오로, 이 일로 배운 게 있어?” “네.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 절대로 학생을 놀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또 배울 게 있어?” 생각을 좀 하다가 “제가 이탈리아 말을 잘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언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그래. 또?” “네, 이젠 없습니다.” “그럼, 잊어버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또 흥분하여 “아니 어떻게 잊습니까? 제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게 말이 됩니까?” 하며 씩씩거렸습니다. 
제 얼굴을 쳐다보던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바오로, 너 지금 기도할 수 있어?” “아니, 지금 기도가 중요합니까? 그 교수가 저를 놀렸다니까요?” 그러자 그 신부님은 “바오로, 하느님이 중요해? 그 교수가 중요해? 지금 네 마음을 온통 그 교수의 말에 빼앗겼잖아! 하느님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너의 마음을 그 말에 빼앗겨 하느님은 안 계시잖아! 바오로, 단 1초라도 네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세상 것에 빼앗기지 마!” 이 말을 듣는 순간 홍두깨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기도와 단식에 전념하고 성전에 나가 하느님을 섬긴 한나처럼, 단 1초라도 하느님이 아닌 세상 것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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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고 한다(제1독서). 정결례 날, 시메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아기가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리라고 한다(복음). 

제1독서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3-11
사랑하는 여러분,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리아와 요셉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하고 첫아들을 주님께 봉헌하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출산한 여인은 사십 일 동안 불결한 사람으로 간주되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일년생 어린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쳐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다시 정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첫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맏배는 하느님의 것이요 주님을 섬겨야 하기에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집트인들의 맏배를 치실 때 자기의 맏배들을 죽음에서 구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레위인들은 첫아들을 사제로 봉헌하여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맏아들을 봉헌하는 대신에 다섯 세켈(20데나리온)의 돈을 성전에 바쳤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 아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소중한 열정, 가장 소중한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랑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처럼 이렇게 소중한 것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봉헌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들어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 쉽다면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 아닐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소중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또 한 번 매달립니다. “제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바치고서 홀로 어찌하란 말씀입니까? 이것마저 없으면 저는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엎드려 통곡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내드릴 터이니 제 아들만 제게 남겨 주십시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하느님과 씨름한 뒤에야 비로소 애착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 하느님과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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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우리는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신다(제1독서). 요셉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간다. 자신의 왕권이 불안한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근처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린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1,5―2,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5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18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위업을 예수님 안에서 계속하시고 그것을 완성하신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중요한 체험들에 참여하시어 새로운 ‘모세’로 제시됩니다. 파라오가 히브리 사내아이를 죽이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살리시고, 피신시키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에서 예수님을 이집트로 피신시키시고 사람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로 보내 주십니다. 
이어서 복음사가는 죄 없는 아기들의 학살로 말미암은 아픔과 비탄을 전합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 31,15). 라마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 유배자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던 출발지로, 라헬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유배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식을 잃은 모든 어머니의 눈물과 통곡을 대변합니다. 이 울부짖음은 하느님을 향한 외침이면서 아직 주어지지 않은 위로에 대한 요청입니다. ‘사실 하느님만이 이에 응답하실 수 있는데, 말을 능가하는 유일한 참된 위로는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만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가져다주며,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 유년기』, 157-158면 참조).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죄한 이의, 한 아이의 죽음, 상처와 아픔 앞에서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도대체 뭘 하셨나?’ 하고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묻다가 ‘사랑만이 전능하다고 믿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힘이 아니라 ‘상처받는 사람 곁에서 더 힘들어하시고, 더 아파하시는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문제를 풀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보다 더 아파하시면서 내 곁을 지켜 주시는 아름다운 분을 만났습니다. 그 아름다운 분을 외면한다면 인간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처럼 아름다워지려고 발버둥 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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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체험한 참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한다(제1독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들은 두 사도는 무덤을 찾아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 요한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로 성 대 야고보 사도의 동생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배와 아버지와 삯꾼들을 남겨둔 채 예수님을 따라나선 첫 제자들입니다(마태 4,21-22 참조). 요한은 예수님의 중요한 순간에 늘 동행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키고, 예수님에게서 어머니를 돌보아 드릴 것을 부탁받은 사랑받는 제자였습니다. 요한은 요한 복음과 서간 세 권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상징으로 독수리가 사용되는데 그의 신학이 독수리처럼 높고 깊은 경지에서 우리를 참된 신앙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20,31).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아드님을 내주실 뿐 아니라, 그 아드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살과 피를 내주시는, 그 끝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삶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하느님께 내가 끝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삶에 기쁨이 넘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과 대화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맺는 인격적인 관계는 동시에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이끕니다. 다른 이들은 내 사랑의 대상일 뿐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해 드리는 것임을 깨닫게 되어, 그들의 행복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에 충만히 참여하게 되고, 그분을 닮아 가고 그분과 일치함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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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고,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시어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내시는데,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간다(복음). 

제1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3,12-21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부모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1-52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지난해 성가정 축일 삼종 기도 뒤에, 가정에 꼭 필요한 말 세 마디가 있다고 하시면서 이 표현을 자주 주고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말은 “~해도 될까요? (미안하지만)”, “고마워요!”, “미안해요.”입니다. 
첫 번째 “~해도 될까요?”는 ‘미안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기쁘게 한다면 해 주시겠어요?’라는 뜻입니다. 흔히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이, 내 부모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로, 그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마태 25,40 참조)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요청할 때는 “~해도 될까요?” 하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말은 “고마워요!”입니다. 이 말은 ‘나는 당신이 나를 위해 한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의 줄임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 내주는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당신의 사랑을 기억할게요.’라는 뜻으로 ‘고마워요.’라고 인사해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과 봉사가 이루어집니까? 이 모든 일에 늘 고맙다고 말해야 합니다. 감사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본 사람들의 표현입니다. 
마지막 단어는 “미안해요.”인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것이 가장 말하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내주고자 하나 자신의 나약함과 섬세하지 못함에서 오는 많은 말과 행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언제나 “미안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와 같이, 우리가 용서의 삶으로 나가게 해 줍니다. 교황님의 권고처럼 이 세 마디의 말을 가족들과 자주 주고받으면 좋겠습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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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신다고 한다(제1독서).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지만, 신약 시대에는 당신의 아드님을 통하여 말씀하신다(제2독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느님이셨다. 이 말씀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다(복음).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2,7-10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8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9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여기에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사랑이신 말씀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가슴속에만 있는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은 만날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영광은 다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드러나신 것입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 모두 하느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과 친교를 맺고, 자녀 됨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성자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60항). 그래서 이레네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사랑이신 말씀께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사랑하는 일이기에 말씀께서는 세상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말씀께서 ‘빵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베들레헴의 작은 구유 위에 누여 계십니다. 마치 ‘나 여기 너의 음식으로 있으니’ 하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말씀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받아 먹으라고 주십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가지려 하는데, 말씀께서는 그저 내주시고 나누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더 작게 되시고, 우리가 그 생명의 빵을 먹음으로써 사랑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우리도 말씀처럼 더 낮은 자리로 찾아가고, 우리 자신을 내주고 나누어 주는 생명의 빵이 될 때, 하느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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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다윗 임금은 하느님의 궤를 모실 성전을 짓겠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신다(제1독서).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서 주님께서 아들 요한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계획을 노래하며 주님을 찬미한다(복음).

제1독서

<다윗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영원할 것이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7,1-5.8ㄷ-12.14ㄱ.16
다윗 1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2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3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4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8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7-79
그때에 요한의 67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0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72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73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74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75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76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아버지가 부르는 ‘즈카르야의 노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노래를 루카 복음사가가 수집하여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기리는 노래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래는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성령으로 가득 찬 즈카르야의 대답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사건을 밝히심으로써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이 드러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또한 그 사건들의 의미를 아시기에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즈카르야의 노래 전반부는 원수들과 미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박해를 받아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 앉아 있다가, 구원자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두려움 없이 거룩하고 올바르게 하느님을 섬기고 평화의 길로 들어선 이들이 부르는 감사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찬미받으소서.’ 하고 시작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에서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시어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고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속량’은 노예 제도 시대의 개념으로, 노예의 몸값인 속전(贖錢)을 내고 노예를 해방시키거나 포로를 석방시켜 자유인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셨다는 말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자비를 베푸셨다는 의미로, 장차 오실 메시아가 원수들을 쳐서 승리한다는 말입니다(유충희, 『루카 복음』, 68-69면 참조).
노래의 후반부는 세례자 요한의 앞날과 역할을 예언하는 시구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장차 예수님께서 오심을 준비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아 구원받으리라는 사실을 주님의 백성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린 즈카르야는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합니다. 나의 혀와 입은 무엇을 노래할까요?(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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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주님께서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시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고 요한이라고 이름 짓자, 즈카르야의 혀가 풀린다. 이웃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한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4.23-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세례자 요한의 탄생>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엘리사벳이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자 이웃과 친척들은 함께 기뻐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하신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가 베풀어졌기에 그들은 더욱 기뻐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그토록 기대하였건만, 점점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음에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은 사람들을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하리라고 합니다. 즈카르야는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여 귀가 막히고 입이 닫힙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여드레 되는 날,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계약의 표시요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인다는 표징인 할례를 하고자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할례와 함께 아이에게 이름이 주어집니다. 이름은 한 사람이 가족이나 이웃들과 관계를 맺어 자기 신원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사명이나 역할을 말해 줍니다. 그러기에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사람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짓는 전통에 따라 아기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자 엘리사벳은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 아이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이기에 이름을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셨다.’는 뜻을 가진 ‘요한’으로 정하여 그 아이가 뒤에 오실 구세주의 길을 닦는 선구자요, 하느님 은총의 증거자이며, 빛을 증언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할 증인임을 밝힙니다. 즈카르야도 글 쓰는 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씀으로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어, 즉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섭리 앞에서 놀라움과 감사함의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의 신앙은 놀라움과 감사함의 기쁨에 넘치고 있습니까?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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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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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초대

한나는 사무엘을 주님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주님께 기도하여 얻은 아이라며 그를 주님께 바치겠다고 엘리에게 말한다(제1독서). 마리아는, 전능하신 분께서 자신에게 큰일을 하셨다며 주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른다(복음).

제1독서

<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24-28
그 무렵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말씀은 기쁨의 빛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 하고 노래합니다. 구약 성경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 나자렛 출신의 한 여인에게 말씀이 찾아와 그 맑은 마음 안에 머무릅니다. 메시아와 하느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는 ‘비천한 종’을 하느님께서 굽어보십니다. 거룩하신 분께서 당신 종에게 머무르시니, 그 마음에 영혼의 빛이 들어섭니다. 그 영혼을 밝히는 빛은 감추어 놓을 수 없어 기쁨의 노래로 울려 퍼집니다.
말씀은 사랑의 빛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큰일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의 땅 이집트를 탈출하도록 큰일을 일으키신 구세주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시고, 그분의 탄생으로 당신 백성을 구원하기 시작하십니다. ‘말씀’을 잉태한 그 사랑의 빛이 이제 우리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진실한 우리 안에 머무르고, 그 말씀을 간직한 우리에게는 사랑의 빛이 들어섭니다.
말씀은 희망의 빛입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교만하여 하느님과 원수가 된 자들을 흩어 버리시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통치자들을 끌어내리시고, 움켜쥐고 자기만 위하는 부유한 자들을 내치십니다. 그리고 비천한 이들은 들어 높이시고 굶주린 이들은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 한 모퉁이에 머무릅니다. 말씀이 머무는 자리엔 희망의 빛이 들어섭니다. 그렇게 들어온 빛은 감추어 둘 수 없기에 기쁜 노래로 세상을 밝힙니다. (서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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